한미관계의 가장 소중한 바탕은 카투사들입니다
한미관계의 가장 소중한 바탕은 카투사들입니다
  • 김수진 기자
  • 승인 2021.03.26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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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스위스포트코리아 대표/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장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 김종욱회장

 

“김덕성, Duksung Kim… 이동균, DongKyun Lee… 최대순, DaeSoon Choi….”

지난 2016년 6월 미국 워싱턴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7052명의 카투사(KATUSA)순직 참전 용사들의 이름이 한글과 영문 이름으로 오전 9시부터 약 12시간에 걸쳐 울려 퍼졌다.

카투사는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으로 1950년 7월 이승만 대통령과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구두 합의에 따라 탄생, 한국군이 미군에 배속되는 방식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6·25전쟁 중 전사한 카투사들의 복지와 예우는 당시 한국군과 미군 양측에 소속돼 있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동안 한국군과 미군들 양측 모두에서 합당한 대우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잊혀진 그들의 존재와 이름이 반세기를 지나 미국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새롭게 기록되고 울려 퍼지면서 미군 참전용사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은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결과의 뒤에는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인 한미동맹의 주역이자 상징인 카투사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김종욱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장(61·스위스포트코리아 대표)의 역할이 크다.

성공의 밑거름이 된 카투사 생활
195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경남상고를 졸업하고 1977년 입대해 카투사가 됐다. 당시 카투사는 특별한 전형도 자격 요건도 없이 입대자 중 무작위 선발이 관행이었다. 동두천 미군 제2보병사단 전산실에서 복무한 김 회장은 카투사 복무 시절 배운 영어와 컴퓨터가 향후 자신의 세상살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제가 군복무 하던 당시 미군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뀌어서 학력이 낮은 미군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속한 전산실은 당시 미국으로서도 첨단 기술이었던 컴퓨터를 다루어야 하는 부서였기 때문에 훌륭한 미군재원들이 많았습니다. 그 덕분에 엘리트 미군들로부터 고급 영어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배울 수 있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김 회장은 캬츄사시절 공부 탓인지 전역하자마자 하는 일 모두 순조로웠다. 그야말로 승승장구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전역과 동시에 그는 부산 컨테이너부두 운영공사에 입사했다. 뛰어난 전산 실력으로 회사 전산실 창립 멤버가 됐다. 1982년부터 항공물류회사 해외영업을 맡았다. 1992년 글로벌 물류업체 판알피나로부터 국내 지사 설립을 제안 받았고, 30대 중반에 판알피나코리아 한국 법인장이 됐다.

과점(寡占) 공항 지상조업에 도전

그는 안정적인 법인장 생활을 뒤로 하고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인천공항이 개항한 다음해인 2002년 공항 지상조업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상조업이란 여객기에 탑승하는 승객의 짐을 비롯한 화물 운반, 항공기 점검 작업 등 공항에서 비행기와 관련된 지상업무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 인천공항 지상조업은 대한항공의 한국공항과 아시아나항공의 아스공항 등 두 개의 소수 기업들이 과점적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경쟁에 밀려 고전하고 있던 루프트한자항공의 지상조업업체 ‘글로브그라운드’를 인수하며 김 회장은 과감하게 과점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양강 구도의 지상조업시장에 파고드는 것은 예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이미 두 회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외국 항공사들은 일감을 내주지 않았다. "글로브 그라운드 인수 당시 고객은 하나밖에 없었고, 신규 고객 유치가 굉장히 큰 사업적 걸림돌"이었다고 회상했다. 대기업이 장악한 독과점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된 서비스 품질을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서비스 품질을 대폭 개선하며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비행기에 화물을 실으려면 이륙 전 시간을 정해 적재를 끝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륙 전 네 시간이 허용된 적재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한 시간 빨리 실으라고 요구하거나 10분 정도 늦었다고 적재를 마감하는 사례가 있어 불만을 가진 항공사가 적지 않았죠.” 

고객 중심 서비스로 무장한 그의 평가는 곧 업계로 퍼졌고 그의 예상대로 2003년 캐세이패시픽항공을 첫 신규 고객으로 유치하며 시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어 2005년 세계 최대 항공지상조업업체 스위스포트와 지분투자 제안이 들어왔고, 회사 이름을 스위스포트코리아로 바꿨다. 현재 김 회장은 델타항공을 포함해 에미레이트항공, 터키항공 등 총 8개 여객 항공사와 DHL, 페덱스 등 총 18개 화물항공사를 상대로 조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외항사를 상대로 한 조업업체 중 최대 규모다. 그는 "스위스포트의 선전이 다른 경쟁사를 자극해 전반적인 조업 서비스가 함께 향상되는 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김 사장은 자신의 성공 비결로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한 경험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미국내 한국 대변하는 친한파(親韓派‘주한미군전우회’을 목표로

성공을 향해 바쁘게 살던 김 회장은 무심코 자신의 성공에 큰 거름이 돼주었던 카투사에 대한 고마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011년 처음 대한민국카투사전우회를 통해서 20여명의 관계자들과 선후배들을 만나고 정지돼있던 전우회의 회장직을 맡으면서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 김 회장의 리더십 아래 전우회는 2013년 외교부 산하 사단법인이 되면서 단체명이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로 바뀌었다.

김 회장은 지난 6년간 큰 비전을 갖고 연합회를 이끌어왔다.

 그는 미국 내 주한미군 관련 단체를 한데 모아 주한미군전우회를 조직하여 한·미 우호관계를 증진하고 미국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여론과 정책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친한(親韓) 단체를 만들고자 했다.

 

“주한미군도 귀국 뒤 전역하면 사회인이 됩니다. 미군 지휘관은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경험을 활용해 한·미 관계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한미군전우회가 결성되면 이곳이 바로 한국을 대변하는 오피니언 단체가 되는 겁니다. 지금도 매년 3만명의 군인이 한국에서 근무하다 복귀하는데, 주한미군전우회가 한국 실정을 미국에 잘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2017년 회장 임기를 마친 뒤에도 명예회장으로 카투사연합회 활동을 지속하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건립이 추진되는 '추모의 벽' 사업은 총 공사비만 1700만달러(약 192억원)에 달하는 큰 프로젝트이다. 그는 건립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이번 추모사업을 계기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카투사 선배들의 호국정신을 되새기고 혈맹으로 뭉친 한미동맹이 더욱 끈끈해지길 기대해본다.

아울러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한반도의 위기를 함께 이겨내고자 하는 김종욱 회장의 노력과 진심이 한반도와 미국에 널리 퍼지길 바래본다.

글/김충일 -사진/ 곽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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