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 의사부부'의 아주 특별한 삶
'다둥이 의사부부'의 아주 특별한 삶
  • 박중하
  • 승인 2018.05.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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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순천향병원 김윤태, 김도의 부부

김윤태와 김도의 부부는 둘다 의사라는 점에서 특이해 보일지 몰라도 실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다둥이 가족이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딸 나현이, 둘째 지한이와 막내 주한이까지 세 남매를 두었다. 커리어 쌓기의 치열한 삶을 잠시 뒤로 미루고 오직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아쉬움을 마다한 이 부부에게 지금은 남들보다 몇십 배 아니 몇백 배의 행복함이 가득하다. 이 특별한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아이 하나도 낳아서 키우기 힘들다며 아예 결혼도 포기하는 것이 요즘 세태인데 딸 하나 아들 둘을 ‘아무렇지도 않게’ 낳고서 옹기종기 모여사는 김윤태 김도의 부부는 특별하다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가족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다. 삼사십 년 전이라면 별반 특이한 일도 아니지만 요즘은 다둥이 가족이 별나 보이는 세상이기에 부득불 만나보기로 했다. 이 특별한 부부와 세 남매가 어찌 사는지 궁금해서다.

Q.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서 만나게 됐나?
김윤태(이하 윤태):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햇수로 따진다면 만난 지 어언 20년이 넘었다.
김도의(이하 도의): 두 사람이 고등학교 1, 2학년 때에 우연히 만나게 됐다. 남들이 보면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만 한 사람들이 아닌가 여길지 모르겠지만 실은 동문회 선후배 모임에서 처음 보았다. 그냥 같은 학교 선후배라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학교 졸업한 선배들도 나오니까 뭐 진학정보도 들어볼 겸 부담없이 나가본 게 인연이 됐다.

Q. 그럼 만나서 마음이 통했다는 이야기인가?
도의: 전혀 그런 게 아니고 그저 처음 만났다는 이야기다. 결혼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상하게 볼 이야기가 아니다.
윤태: 뭐 같은 학교니까 오가며 친하게 지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졸업해서 대학에 갔고 반대로 아내는 재수를 하게 되는 바람에 자연스레 멀어졌다고 해야 할까? 그냥 그렇게 시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Q. 결국 앞부분은 그냥 만난 인연 뿐이라는 이야기겠다. 그럼 두 사람의 본론은 어찌 시작되었나?
윤태: 순천향대학교에 들어갔고 아내가 또 후배로 입학해서 들어왔다. 물론 그 사이 몇 년 동안 각자 알아서 연애도 하며 서로의 인생을 살았다. 이런 것을 두고 각자도생이라고 할 것이다그냥 선배와 후배. 내가 본과 4학년 때, 2학년인 아내와 다시 사귀어 보자고 했다. 그게 이야기의 시작이다.
도의: 아마 지금 그리 하라고 하면 못 할 듯 싶은데…그때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던 것같다. 몇십 년 동안 할 이야기를 서로 나눈 뒤에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다.

Q. 연애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궁금하다.
윤태: 남자의 경우 인턴을 마치고 전공의로 이어지게 되는 데, 나는 시험에서 떨어졌다. 당연히 군대에 가야했다. 전공의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떨턴', 즉 시험 떨어진 인턴이라고 한다. 떨턴의 입장이 되고서 군의관이 되어 추위에 떠는 전방 생활을 하게 됐다. 사실 군의관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와 결혼도 했다.
도의: 앞서 이야기 했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다시 만나기 전까지 정말 각자의 삶의 살아왔다. 나름대로 이에 만족하면서 지냈다고 보는데, 마음 먹고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가감없이 서로 나누면서 이런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었다고 할까? 그래서 주변사를 정리하고 정식 교제를 시작했다. 결혼을 결정한 건 좀 사연이 있긴 한데, 오빠의 불안한 마음 때문이랄까? 군의관 생활을 하면서 무척 불안해 하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혹시나 해서 서둘렀다고 보는 게 옳겠다.

Q. 두 사람의 전공은 어떤 쪽인가?
윤태: 본래 의대 다니는 사람들의 로망은 외과의가 되는 것인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군의관 생활을 하던 기간 나름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름대로 겪을 것을 다 겪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래서인지 의사로서 좀더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분야를 찾게 됐다. 그게 재활의학과였다.

도의: 신경과 전공이고 지금은 응급실에서 아주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인 만큼 대단히 민감하면서도 단호함이 요구되는 위치이다. 지금 남편과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기에 서로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Q. 같은 병원이기에 서로의 함께 있을 시간이 많겠다.
도의: 의외로 그렇지 못 하다. 당직을 서야 하는 날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못 만나는 날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두 사람이 함께 지낼 시간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는 데, 그 방법으로 정한 게 병원 안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겠다.
윤태: 사실 이러한 시간 배려도 아이를 둘 가질 때까지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가 일에 완전히 매어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욕심이 많았을 것이다. 학교에 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을 테고. 우리 가족이 진정한 가족으로서의 외형적 혹은 내면적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아이 셋을 갖게 되면서 부터라고 본다. 진심으로.

Q. 아이 덕분에 가족이 됐다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의 표현을 말하는가?

도의: 부부가 되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을 두고 가족을 이뤘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아이들에게 진 빚을 뜻하기도 한다. 커리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들, 특히 의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여성은 대부분 정해진 스케줄이 있기 마련이다. 임상의로 지내다가 아이를 갖고 전공의를 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레 학교에 봉직의로 남게 되는 그런 과정을 뜻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고 몇 년 안에 아이들을 갖게 되는 게 일상인데, 의사들은 그 동기라는 게 일반인과 많이 다르다는 게 문제이다. 결혼하고 몇 년 지났는데 일에 쫓겨 아이를 갖지 않으면 시댁어른들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1~2년 안에 첫 아이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첫 아이는 선배들의 조언대로 계획해서 갖게 됐는데, 꼭이 원해서라기 보다는 부모님들에 대한 책임감이랄까? 그게 더 컸던 것같다. 손이 많이 가는 첫 딸인 데도 4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에만 매달렸다. 그게 옳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고 아이에게 마음 한켠 고통을 주었을까 후회되는 부분이다.

Q. 그렇게 후회되고 힘들었다면서 둘째, 셋째는 어떻게 갖게 됐나?
도의: 남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둘째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차에 생겼다. 그런데 정작 둘째를 낳고 보니까 상황이 아주 심각하더라. 엄마든 아빠든 다 바쁜 사람이니까 딸아이가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할머니에게 의지하면서 지냈으니 엄마와의 거리감이 엄청났던 것이다. 어리광도 부리고 칭얼대기도 해야 할 딸 아이가 엄마를 가까이 하려 하지 않고 뭔가 요구사항이 있어도 동생이 생겼으니까 속으로 참고 넘어가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심지어는 꾸지람을 하면 엄마와 풀어야 할텐데 할머니 댁으로 쪼르르 도망가버리는 식이었다.

윤태: 같은 의사부부지만 남편의 입장에서 곁에서 지켜볼 때 안타까운 점이 정말 많았다. 전공이 신경과니까 일반적인 과목과는 많이 달라서 학교를 떠나게 되면 쌓아온 모든 커리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 긴장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첫째 그리고 둘째를 갖게 되면서 어찌보면 큰 위기였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같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배우자이기 때문에 가정과 일 모든 부분에서 상대방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말 안 해도 알고 있으니까 사실 곁에서 지켜보는 것조차 참 힘들고 괴로웠다. 아내가 남편과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 결국은 집안에서 불안을 키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유를 잘 아니까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셋째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Q.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길래?
도의: 셋째는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다. 친구가 산부인과의라서 진찰을 해주면서도 어려울 수 있으니 셋째는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몸을 추스르고 쉬어야 하는 데도 보통 때처럼 근무하고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만약 하느님이 주신다면 낳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미련을 갖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뱃속의 아이가 잘 버텨주는 거다. 정작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세상을 대하는 시각이 바뀌었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가족의 소중함을 등한시 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순간 셋째 아이를 낳게 되면 가족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이 섰다. 마음이 정해지니까 내 앞에 놓여져 있던 일거리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휴직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그것도 짧은 휴직이 아니라 딸 아이가 학교 들어가게 되니까 그것도 돌봐주기 위해 긴 시간을 쉬겠다고 선언했다. 아마 주변사람들이 다 나를 이상하다고 여겼을 거다. 물론 나도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윤태: 아마 아내가 놀랐을 겁니다. 셋째 낳고 휴직하고 나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복직되고 학교에 교수로 남는 수순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여겼을테니까. 그런데 그 시기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의 기간 중이었다는 거다. 즉 휴직하면 다시 복직할 기회가 막막해지는 상황이었다는 거다. 아마 동료들이 그 시기에 정규직인 상태였기 때문에 본인도 그에 해당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참으로 황당했을텐데 아내의 결심은 확고했다. 상황이 어찌되든 셋째를 낳고 키울 때까지 넉넉하게 쉬고 집안일을 돌보는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굳혔던 거다.

Q. 무엇이 그리도 달라 보였나?
윤태: 우선 첫째와 둘째를 가졌다고 전해주던 아내의 표정과 셋째는 사뭇 달랐다. 그때 아내는 세브란스 병원에 있었는데, 가까운 서대문 근처의 작은 원룸에서 일에 파묻혀 지냈다. 위치도 병원과 가까운 곳이라서 고른 것이었다. 그저 모든 것이 커리어를 쌓는 데에만 맞춰져 있었다는 의미겠다. 아내는 아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셋째 아이를 가졌다고 전했고 출산을 위해 하던 일을 접고 가정에만 신경 쓰겠다는 결심히 담담하게 표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도의: 지금도 그때 남편의 한 마디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연애 시절의 표정을 다시 보는 것같다”는 그 말을. 이건 정말 눈물나는 이야긴데, 그 한 마디를 듣고 보니 내가 얼마나 내 일에만 몰두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홀했었나 후회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아마도 셋째 아이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일에만 매달리고 아이는 알아서 어른들이 키워줄 것이고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 가족일 거라는 사실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마음같아서는 포기하는 느낌일지 몰라도 나는 셋째로 인해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시부모 님까지 다시 얻은 느낌이었다

Q. 지난 몇 년 간의 변화라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
도의: 다행스럽게도 남편과 같은 병원에 자리가 나서 복직된 셈이 됐다. 신경과가 아닌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적응을 잘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정에서 되찾은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남편의 전공분야와 서로 백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여느 의사부부들처럼 스케줄 때문에 늘상 붙어지낼 수는 없다. 그게 아쉽긴 해도 이 정도 만으로도 행복감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윤태: 아내는 전공이 신경과인 데다가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대단히 긴장되고 빠른 판단을 요하는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 이에 반해 내 경우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하고 환자가 회복되기까지 인내력이 요구되는 분야라는 점에서 서로 맞서지만 실제로는 서로 보완해주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줄 수 있기에 되레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흔히 의사라는 직업군을 두고 화려할 거라고 여기거나 일반인에 비해 좋은 경제적인 환경일 거라고 보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김윤태 김도의 부부를 통해 바라본 의사라는 삶은 여느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커리어를 쌓기 위해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해야 함은 물론이고, 사랑 만이 가득해야 할 가족과의 관계마저 차선으로 미뤄야 하는 안타까움이 존재함은 똑같아 보였다. 다둥이 가족이 외동 자녀가정보다 세 배쯤 부담될지 몰라도 김윤태 김도의 부부의 세 남매로 되찾은 가족의 행복감으로 이 모든 부담감을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무자식 상팔자라고는 하지만 이 부부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다섯 식구의 웃음은 남달라 보인다.

글_박중하, 사진_Jukerman Bahk, 김윤태 김도의 제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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