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그 속에서 만들어질 또 다른 나를 기대한다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그 속에서 만들어질 또 다른 나를 기대한다
  • 원현숙
  • 승인 2018.05.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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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토탈미용학과 김윤정 교수

어느날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인생직업을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 가장 빛나고 돋보이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일을 충분히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새로 맺은 인연이나 절망 끝 찾아오는 희망, 때로는 전혀 의도치 않은 우연한 기회가 인생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주어지는 인생의 전환점이 그저 그런 일상처럼 스쳐 지나가느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느냐는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 있다.
약품 냄새 맡던 실험실 연구원에서 화장품에 묻혀 사는 메이크업 전문가로
한창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 실험실에서 근무하던 그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다. 각종 화학약품과 중금속을 분석하는 일상이 반복되며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때였다.
“안정되고 전문적인 직업이긴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 갇혀 약품 냄새 맡으며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전공을 살린 직업이라 당연히 내 일인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연 나에게 맞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죠. 그러던 중 실험실에서 손을 다치게 되면서 일을 관두고 잠시 쉬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정말 뜻하지 않게 제 삶이 180도 바뀌는 일을 만나게 된 것이죠.”

그녀에겐 정말 우연하게도 그런 기회가 찾아왔다.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한 메이크업 학원의 헤드헌터로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학원 졸업생들과 숍을 연결해주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 일을 하면 할수록 메이크업 분야에 점점 관심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약품 냄새만 맡고 실험도구만 봐오던 그녀에게 형형색색의 화장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세계였다.
결국 학원을 등록, 낮에는 헤드헌터로 밤에는 수강생으로 본격적인 메이크업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을 수료한 뒤에도 곧바로 웨딩숍과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이 일을 하면서 그녀가 느낀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웨딩이나 패션쇼, 공연 등 메이크업이 필요한 곳은 늘 북적북적 사람이 많이 모이고 에너지가 넘치죠. 가장 행복하고 설레는 그 순간을 위해 메이크업을 받는 사람들 또한 들떠 있고 그 기운이 저희에게 전달돼 덩달아 신이 나고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죠.”

시간과 돈, 젊음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인생직업이 되다

생업을 위해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서였을까?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 직장이 있던 청주와 서울의 학교를 오가는 고된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일도 놓고 싶지 않았고 공부에 대한 욕심도 많았죠. 하지만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생뚱맞게 메이크업 공부를 한답시고 집에 손을 벌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을 하며 학비를 직접 벌어 대학원 공부를 마쳤어요. 학비 못지않게 길가에 뿌린 돈도 만만치 않았죠. 그때는 몸이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제 선택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그 시기를 잘 견뎠기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이나 다름없죠.”
졸업 후 그녀는 패션쇼나 연극무대, 잡지촬영, 웨딩 등 메이크업이 필요한 현장이라면 어디든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흐름을 읽고 새로운 트렌드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발로 뛰고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했다. 패션쇼에서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수십 명이나 되는 모델 얼굴만 보며 작업을 한 적도 있고, 연극과 학생들의 연극축제를 돕기 위해 기꺼이 지방까지 내려가 재능 기부를 하기도 했다. 웨딩촬영에서부터 광고 촬영, 지역 축제나 문화행사, 심지어 대학 졸업앨범 촬영 등 메이크업이 필요한 곳은 의외로 너무 많았다. 웨딩이나 방송 메이크업으로 한정적이었던 분야가 특수 분장, 무대분장, 바디페인팅 등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다 보니 일을 하면 할수록 새롭고 배울 것이 많아 상념에 잠길 틈조차 없었다.

강한 정신력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장, 상처 받고 의견 충돌도 허다해

그녀의 20대와 30대를 돌아보면 패션쇼 대기실이나 무대 분장실 만큼이나 정신없고 숨 가빴다. 그래도 그렇게 치열한 현장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나면 짜릿함과 성취감이 늘 보상으로 따라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은 일이 주는 성취감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때문에 이 직업을 택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방송이나 무대 가까이서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런 면만 보고 덜컥 시작했다가 결국 제대로 일 한 번 못 해보고 돌아서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특히 이 분야는 멘탈이 강해야 해요. 여성들은 메이크업 하나에도 기분이 업다운 될 만큼 예민한 부분이거든요. 분장이든 메이크업이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클레임이 들어올 수 있어요. 특히 미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애써 해 놓은 메이크업이 마음에 안 든다며 그 자리에서 다 지워버리기도 하고 계속 본인의 생각을 고집하기도 하죠.

눈매나 얼굴형 등 근본적인 문제를 메이크업 탓으로 돌리기도 해 난감한 상황도 종종 있어요.”
화려한 기술이나 감각이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고 의견을 잘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때론 더 빛을 발휘할 때도 있다.
그녀가 학생들에게 늘 당부하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자격증만 가지고 무작정 나가기에는 현장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 것. 현장은 그야말로 정글이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초보의 실수를 눈감아 주거나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따져 바로 잡아주지 않는다. 때문에 충분한 전문 교육 과정을 밟고 기본 지식과 실기 실력을 갖춰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야만 그 바닥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뷰티메이크업 분야가 여성들이 일하기에는 전망이 밝은 편이에요. 특히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파트타임이나 프리랜서로 충분히 일을 할 수 있고, 실력만 갖춰진다면 강의 기회도 많아 전공을 살려 길게 호흡할 수 있는 직업이죠.”
 

교안 준비, 온라인 강의 촬영, 도안 개발까지…  현장과는 또 다른 긴장과 묘미가 있어

그녀는 4년째 토탈미용예술학과 메이크업 주임교수로 강단에 서있다. 기본 메이크업에서부터 무대분장, 특수 분장, 바디페인팅 등 전반적인 메이크업의 이론과 실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는 학교 특성상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이 모두 이루어지는 곳이다. 수년 동안 학교와 메이크업 학원에서 강의를 한 전문가이지만 이상하게 학교 온라인 수업만큼은 늘 긴장된다.

20대에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었지만 20년 후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지금부터 베이스를 깔고 조금씩 색을 채워 넣어 20년 후 완성될 그 순간은 아마도 그녀에게 또 다른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온라인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 중에는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보다 경력도 훨씬 많으시고 직접 숍을 운영하시거나 강의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그분들에게 제 강의가 하나라도 더 보탬이 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죠. 관련 서적이나 학술자료, 논문 등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해야 강의 후에도 미련이 남지 않더라고요.”
온라인 강의는 교안도 직접 만들어야 하고 더욱이 동영상 강의는 정해진 25분에 맞춰 끝내야 하니 사실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학원 강의에 집안일까지 하려면 그야말로 늘 과부하 상태다. 현장을 떠나 잠시 숨 좀 고르나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그래도 머릿속에만 있던 내용을 책으로 엮어 한 권 한 권 쌓이는 것을 보면 현장에서 일할 때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다만 강의를 위한 도안 개발만큼은 창작의 고통이 따른다고.

“매주 새로운 도안을 하나씩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틈만 나면 그림 그리는 것이 버릇이 됐죠. 차를 마시거나 집에서 쉴 때도 손으로는 늘 뭔가를 그리고 있어요. 붓과 물감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손톱 밑이 까매져 솔직히 어디 가서 손을 내 놓기가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그래도 이 손 덕분에 지난 20년 가까이 꾸준히 일할 수 있었으니 그간의 수고와 노력이 고스란히 배인 흔적이라고 해야겠네요.”

자신에게 선물하고픈 또 다른 인생, 20년 후의 삶이 기대되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시간과 온 힘을 들여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됐지만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워킹 맘으로서 나름의 애환도 있을 것이다. 집에 있을 때 만큼은 가족 중심으로 생활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남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최대한 이해를 구하는 편이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둘째 딸 아이가 엄마가 일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을 때도 아이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몇 개월 동안 일을 줄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일을 줄인 만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아이도 금방 안정을 찾고 이제는 엄마의 일을 인정해 준단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주고 엄마가 왜 일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 얘기해줬죠. 아이들이 이만큼 크고 나니 충분히 제 말을 알아듣고 금방 적응하더라구요. 아이들은 언젠가 각자의 생활을 할 테고 그때 제가 다시 일을 찾기에는 너무 늦지 않을까요? 저에게 주어진 삶인데 그 속에 제가 아닌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란 이름만 있다면 그 공허함이 너무 클 것 같아요. 저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면서 배려하는 모습은 아마 아이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지금껏 달려온 시간만큼 세월이 흐르면 그때는 또 삶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기대가 크다.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도자기를 빚고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미소가 절로 나온다. 20대에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었지만 20년 후에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지금부터 베이스를 깔고 조금씩 색을 채워 넣어 20년 후 완성될 그 순간은 아마도 그녀에게 또 다른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글_원현숙 사진_Jukerman Ba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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