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일상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거예요
놀이가 일상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거예요
  • 남궁소담
  • 승인 2018.05.23 14: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놀이활동가 조봉신

놀이를 단순히 재미로만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놀이에는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어요. 예를 들어 딱지치기를 한다고 해보죠. 딱지를 쳐서 뒤집히면 따는 놀이죠.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걸 쉽게 못해요. 자기 걸 잃게 된다는 두려움이 너무 큰거죠. 그래서 딱지를 하나 잃으면 울고 감정 컨트롤을 못해요. 실패의 경험이 없으니 딱지치기 하나도 쉽게 못하는 거예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놀이’라는 말은 특별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명절이나 행사 때만 할 수 있는 것, 또는 시간적 여유가 많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단법인 '놀이하는사람들'의 조봉신 씨는 놀이가 일상이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니, 놀이가 일상이 된다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매주 수요일, 놀이판을 벌이다
조봉신 씨는 어느날 우연히 전래놀이를 접하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주민센터에 갔다가 그곳에서 전래놀이 교실을 발견한 것이다. 3개월 정도 활동을 하며 말 그대로 재미있게 놀았다. 장단에 맞추어 ‘여우야 여우야 놀이’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시절에 접해보지 못했던 전래놀이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수강 인원 부족으로 강좌는 더 이상 개설되지 않았고, 아쉬운 마음만 간직해야 했다.
“당시 5~6세 아이와 엄마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렇게 어린 아이를 둔 부모님들도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강좌를 수강하지 않더라구요. 저는 그때 전래놀이가 재미있어서 더 놀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다시금 전래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와 함께 전래놀이를 했던 즐거운 기억이 조봉신 씨를 도전하게 했다. 용기를 내어 사단법인 '놀이하는사람들'의 문을 두드렸다. 전래놀이 활동가 양성과정을 통해서 놀이를 배워나갔다. 날이 갈수록 놀이가 점점 더 재밌어졌다.
“전래놀이가 너무 재밌어서 아이들에게 빨리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아이의 친구들을 모아서 매주 놀이판을 벌였죠. 동네 공원에서요. 처음에는 아이 친구들만 나왔지만 점점 더 규모가 커져서 나중에는 30~40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였답니다.”

조봉신 씨는 매주 수요일마다 동네에서 놀이판을 벌였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가느라 공부하느라 다 같이 모여서 활동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다양한 연령의 어린이들이 30~40명이나 모였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놀이판이 정례화되자 엄마들이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수요일에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지역 엄마들이 마음을 연 것이다. 이때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이 놀이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힘차게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한 달에 두 번씩, 어른들이 모여서 전래놀이를 해요. 아이들에게 놀이를 소개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잘 놀아야 하잖아요.”


가족에게도 놀이문화가 필요해

 

'놀이하는사람들'은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놀이가 작은 쉼표가 되어주고 서로를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서원하며 지역 곳곳에 놀이문화를 전파한다. 조봉신 씨는 현재 '놀이하는사람들'의 경기지부 지부장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놀이마당을 열어서 시민들 누구나 두세 시간 재밌게 놀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달팽이 놀이, 8자 놀이, 비석치기 등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지죠. 또 1년에 한 번은 전국 놀이의 날을 개최해요. 모든 지회가 한날한시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놀이의 꽃을 피우는 거죠. 회원들끼리 한 달에 두 번씩 모여서 놀기도 해요. 어른들이 모여서 전래놀이를 하는 거죠. 아이들에게 놀이를 소개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잘 놀아야 하잖아요. 각 지회마다 모여서 두 시간 동안 실컷 노는 거죠. 또 ‘놀이보따리 웃음보따리’라는 활동이 있는데요.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놀이보따리 웃음보따리’는 보따리에 놀잇감을 지고 가서 펼쳐놓으면 아이들이 그 안에 웃음을 가득 채워주기를 바라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지역아동센터나 보육원 등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한다. 놀이문화에서 소외된 아이들에게 놀이를 알려주고, 공동체 안에서 놀이문화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며 활동하고 있다.

놀이마당을 열 때는 가끔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아이를 데리고 왔던 엄마가 더 신이 나서 하이힐을 벗어두고 놀이에 빠지는가 하면 지나가던 할아버지도 멈추어 서서 비석치기를 함께 한다. 조봉신 씨는 되도록 엄마 아빠도 함께 놀이하기를 권한다.
“엄마 아빠가 놀이의 즐거움을 모르면 아이가 같이 놀자고 했을 때 ‘친구랑 해’ 이렇게 말하게 되거든요. 아이가 왜 신이 났는지도 이해할 수 없게 되죠. 그래서 온 가족이 같이 놀이에 참여하게끔 유도해요. 엄마 아빠들이 아이보다 더 신이 나서 놀이하는 모습도 많이 봐요.”
놀이문화가 가족 안에서 자리 잡았을 때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는지는 조봉신 씨 가족을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쉽다. 현재 시아버지와 함께 3대가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는데, 온 가족이 놀이를 즐기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큰아이는 저랑 같이 공기놀이로 내기를 하곤 해요. 진 사람이 설거지를 하죠. 아이 아빠는 지금 50대니까 어렸을 때 골목에서 많이 놀았던 세대예요. 그래서 집에 있는 여러 놀잇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아빤 이렇게 놀았다’고 알려주더라구요. 시아버지는 전래놀이를 가장 많이 접해보신 분이잖아요. 아이들이 할아버지한테 가서 같이 놀이하자고 하면 정말 좋아하시더라구요. 또 손자들에게 놀이를 알려줄 수 있다는 걸 뿌듯해하시고요.”


“놀이에서 재미는 빙산의 일각이에요. 그 재미 밑에는 안타까움, 좌절, 실패, 분노,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떠받치고 있는 거죠. 제가 놀이에서 주고 싶은 건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거예요.”

 

놀이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작은 인생

 

놀이는 가족에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에게 인생을 배우는 기회를 준다. 특히 지속적으로 놀이를 했을 때 아이들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놀이를 단순히 재미로만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놀이에는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어요. 예를 들어 딱지치기를 한다고 해보죠. 딱지를 쳐서 뒤집히면 따는 놀이죠.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걸 쉽게 못해요. 자기 걸 잃게 된다는 두려움이 너무 큰 거죠. 그래서 딱지를 하나 잃으면 울고 감정 컨트롤을 못해요. 실패의 경험이 없으니 딱지치기 하나도 쉽게 못하는 거예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경험만 주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무언가를 잃거나 실패해볼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놀이판이라고 하는 안전한 세계에서 아이들은 때론 딱지를 따고 때론 잃으면서 기쁘고 슬프고 신나고 속상한 여러가지 감정들을 겪는다. 오늘 딱지치기에서 졌어도 다음주에 다시 놀이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공과 실패의 경험에 단련이 된다.
“어렸을 때 고무줄놀이 했던 걸 떠올려 보세요. 몇 달 간 노력을 해서 마침내 고무줄을 제대로 넘었을 때, 그게 정말 재밌는 거잖아요. 실패의 과정이 축적되어서 기쁨이 더 커지는 거죠. 딱지치기도 딱지를 잃어봤기 때문에 재밌는 거예요. 잃지 않는 딱지치기는 재미없어요. 놀이에서 재미는 빙산의 일각이에요. 그 재미 밑에는 안타까움, 좌절, 실패, 분노,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떠받치고 있는 거죠. 제가 놀이에서 주고 싶은 건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거예요. 그리고 ‘훌훌 털고 일어나 또 하면 되지’하고 말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해요.”

놀이는 또한 사회성을 길러준다.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내 주장만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고 때론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놀이를 잘하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해내야 한다. 조봉신 씨는 그것이 바로 사회성이라고 얘기한다.
“아이들은 술래를 안 하고 싶어해요. 역할이 무겁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자기가 술래를 해야 할 차례가 오면 ‘나 안 해!’하고 놀이판을 나가 버려요. 그러고 나면 다른 친구들이 그 아이와 어울려 놀기 싫어합니다. 쟤는 술래의 역할을 안 했으니까 같이 놀기 싫다는 거죠. 놀이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성장할 수 있어요.”
놀이활동가들이 이른바 ‘놀이파괴자’라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있다. 바닥에 놀이판을 그려놓으면 발로 지워버리는 등 놀이를 무조건 방해하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화가 난 나머지 놀이를 파괴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1년 여 동안 지속적으로 놀이를 하고 난 뒤에 이 ‘놀이파괴자’ 아이들이 ‘놀이이끔이’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마냥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죠. 그들은 놀이를 배워가는 과정이 싫은 거예요. 당장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매주 놀이를 하면서 여러 역할을 경험하면 아이들이 변화하기 시작해요. 놀이가 어떤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놀이는 때론 전혀 주목 받지 못했던 아이를 영웅 대접 받게 한다. 전래놀이의 경우, 우연으로 결정되는 놀이가 많아서 그날의 운에 따라 또는 잠깐의 기지와 순발력으로 술래가 잡아둔 아이들을 모두 구해내는 영웅이 탄생하기도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처럼, 무엇을 잘하는 아이만 주목 받잖아요. 하지만 사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아이들도 다 자기 몫이 있죠. 놀이 안에서는 누구나 영웅이 될 수도, 주인공이 될 수도 있어요.”


“놀이는 삶에서 꼭 필요합니다. 정말 잘 놀아야 잘 큰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합니다.”


실뜨기 놀이와 산가지 놀이, 함께 놀아볼까요?

요즘 놀이문화가 부족한 건 어린이뿐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경쟁사회 속에서 숨 쉴 틈 없이 바쁘게만 살아간다. 조봉신 씨는 어른들에게 놀이가 삶의 윤활유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른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놀이는 실뜨기 놀이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둘이 하는 실뜨기가 발달해있죠. 실뜨기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놀이예요. 체력적인 부담도 없구요.”
어린 시절에 했던 실뜨기를 막상 다시 하려면 잘 안 될 수도 있다. 기억력이나 손의 움직임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봉신 씨는 자기 나이만큼 반복해서 연습하라고 말한다.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이는 놀이인 만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는 ‘산가지 놀이’를 해보면 좋겠다. 산가지란 옛날에 주판이 없던 시절 나뭇가지로 셈을 했던 것에서 비롯된 놀이라고 한다. 주판이 등장하면서부터 산가지가 필요 없어지자, 아이들의 놀잇감이 된 것이 등장 배경이다.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와도 좋고, 여의치 않으면 집에 있는 나무젓가락에 예쁘게 물감을 칠해서 산가지를 만들어도 좋겠다. 산가지 놀이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두 가지를 추천했다.

“첫 번째는 산가지와 주사위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예요. 1부터 6까지 산가지를 한 개, 두 개, 세 개…여섯 개, 이런 식으로 놓는 거예요. 주사위를 던져서 3이 나오면 3에 해당하는 산가지 3개를 없애요. 5가 나오면 5에 해당하는 산가지 5개를 없애고요. 그런데 주사위에서 또 3이 나왔다고 하면 아까 없앴던 산가지를 다시 내려놓는 거죠. 누가 산가지를 더 빨리 없애느냐를 겨루는 놀이예요.
두 번째는 산가지를 쌓아놓고 하는 놀이인데요.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 다음, 산가지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예요. 이때 다른 산가지를 건드리면 다시 내려놔야 해요. 가만히 내려놔도 되지만 일부러 판을 흔들면서 ‘에잇!’하고 거칠게 내려놔도 됩니다. 산가지를 많이 가져간 사람이 이기는 거죠.”

조봉신 씨는 이렇듯 남녀노소 누구나 놀이를 접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를 바랐다. 특히 아이들의 놀이할 권리를 지켜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의 반대말이 놀이가 아니거든요. 놀이는 삶에서 꼭 필요합니다. 정말 잘 놀아야 잘 큰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합니다. 놀이가 일상이 되는 날이 곧 오겠죠?”

글ㆍ사진_남궁소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