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안에 제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야구 안에 제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 승인 2018.03.2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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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사 아카데미 대표 이충희


“선수였을 땐 내가 잘하려고 야구를 봤다. 하지만 코치가 된 후에는 내가 지도하는 선수들을 위해 야구를 본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를 위한 야구에서 다른 선수를 위한 야구로 바뀐 것이 가장 크다.”

2017년 한국프로야구는 2년 연속 800만 관중 흥행기록을 세우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스포츠 자리를 더욱 공고히 했다. 더욱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있는 2018년은 국가대표 야구경기의 호재까지 겹친 해로 야구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야구의 열기는 ‘보는 야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2016년 기준 전국의 야구동호회 팀은 2만 여개에 이르고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보는 야구’는 물론 ‘하는 야구’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 그와 함께 야구레슨, 연습장, 야구장 등 관련 산업의 규모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야구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선수에서 야구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이충희 야미사 아카데미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야구선수로 살아왔다. 야구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
아버지가 운동을 정말 좋아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야구, 축구 등 각종 스포츠 경기를 직접 보러 다녔었다. 그 중에서도 야구를 제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친구들과 동네야구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내가 다녔던 성동초등학교는 야구부로 유명한 학교였다.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선수인 김재현, 이용규, 정수근 선배님의 모교이기도 했다. 매일 하교를 하면서 야구부 친구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부럽게 보다가 결국 부모님께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야구부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하진 않으셨나?
오히려 정반대였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흔쾌히 허락하셨다. 늘 스포츠 경기장에 나를 데려가셨던 아버지는 사실 어렸을 때 꿈이 운동선수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야구부에 들어가는 걸 더 반기셨다. 대신에 운동만 하는 야구선수는 원치 않으셨다. 지금은 모든 야구부 선수들이 학교공부와 운동을 병행하지만 그 당시 야구부는 학교수업을 빼고 종일 훈련만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침부터 야간까지 훈련을 마치고 밤 9시쯤 집에 돌아가면 학습지를 풀고 과외수업을 하기도 했다. 종일 훈련으로 녹초가 된 몸으로 늦은 시간 공부까지 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인생에 큰 도움이 된 시기였다.

 

-투수로 선수생활을 했다. 본인은 어떤 선수였나?
왼손잡이였기에 뛸 수 있는 포지션이 한정되어 있었다.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는 우익수와 1루수를 번갈아 봤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가끔씩 투수로 등판하기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투수로만 선수생활을 했다. 코치님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폼이 예쁘다’였다. 스스로도 공을 던지는 폼에는 자신이 있었다. 다만 투수 중에는 체격이 좋은 친구들이 워낙 많았다. 그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았던 나는 힘보다 제구력에 집중했다. 원하는 코스로 다양한 구종을 던지기 위해 연습했고. 그 중에서도 직구, 투심, 커브가 제일 자신 있는 구종이었다.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기교파 투수’였다. 

 

-선수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당시 6학년 선배들이 정말 야구를 잘했었다. 우리 학교가 대회 결승전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경기가 치러진 목동 야구장으로 전교생이 단체응원을 왔다. 밴드부, 사물놀이부가 분위기를 띄우면서 응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그날 처음으로 정식 게임 투수로 등판했었다. 결승전이기도 했고 관중이 많은 경기를 처음 뛰어보기 때문에 정말로 가슴이 뛰었던 날이었다. 다만 경기 결과는 좋지 않았다. 21대 1로 경기를 지고 준우승을 했다. (웃음)

 

-현재 <야미사 아카데미>의 대표 겸 수석코치다. 선수에서 코치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리그팀 고양 원더스와 파주 챌린저스에서 뛰었다.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가려면 프로팀 입단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계속 프로팀에 도전하기엔 나이에 대한 부담이 컸고 무엇보다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새로운 일을 하려면 지금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코치로 전향하기로 맘먹었고, 예전에 코치로 활동했었던 <야미사 아카데미>의 대표 겸 수석코치가 되었다.

-직접 운영하고 있는 <야미사 아카데미>는 어떤 곳인가?
<야미사 아카데미>는 ‘야구에 미친 사람들’의 줄임말이다. 야구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야구 트레이닝 센터다. 주로 사회인 야구인과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친다. 요즘엔 여자 사회인야구도 활성화 되어서 여자선수들도 아카데미를 찾고 있다. 야구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주로 오시지만 더 잘하기 위해서 오는 분들도 많다. 취미로 하는 야구지만 실제 선수 못지않은 열정을 가진 분들이 많다. 훈련이 끝나면 그날 연습했던 모습이 담긴 피드백 영상을 보내드리는데 직장인이었음에도 다음 훈련까지 본인의 부족한 점을 집에서 전부 연습해서 오신 분도 있었다.

 

-야구선수에서 야구코치로 전향하면서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을 것 같다.
선수였을 땐 내가 잘하려고 야구를 봤다. 그래서 왼손잡이 투수들의 영상만 찾아보고 공부했었다. 하지만 코치가 된 후에는 내가 지도하는 선수들을 위해 야구를 본다. 왼손잡이 투수뿐만 아니라 모든 포지션의 다양한 선수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공부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를 위한 야구에서 다른 선수를 위한 야구로 바뀐 것이 가장 크다.

 

<야미사 아카데미>만의 트레이닝 시스템이 있는가?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건 체계적인 선수관리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코칭 받는 선수가 많아지면 개인별 맞춤 관리가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야미사 아카데미>에서는 선수별로 훈련 스케줄과 프로그램을 전산화하여 관리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회원들이 아카데미를 방문하지만 어떤 선수가 무슨 훈련을 했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가 한 눈에 파악이 된다. 또한 야구 테크닉의 기반이 되는 기초운동자세 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사진, 영상을 이용하여 선수별로 정적, 동적 운동자세의 교정과 운동능력 개선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선수별로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한다는 게 우리 아카데미의 운영방침이다.

 

코치로서의 야구철학은 무엇인가?

야구 실력은 좋은 폼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간혹 힘으로만 야구를 하려는 선수들이 있다.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을 내기 위해 무리를 한다. 처음에는 통할 수 있지만 결국 한계점을 만나고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좋은 폼은 내가 가진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쓰는 것이다. 올바른 자세에서 가진 힘의 최대치가 나오고 좋은 퍼포먼스로 연결된다. 그러기 위해선 특정부위만 트레이닝 하면 안 된다. 우리 몸은 모든 신체부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동작 하나에도 온 몸이 관여하게 된다. 전체적인 몸 밸런스와 신체역학을 고려한 폼을 배워야 부상을 피하고 내가 가진 힘의 최대치를 쓸 수 있다.

 

코치가 된 후에 공부할 게 오히려 더 많아졌을 것 같다

맞다. 선수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야구관련 책도 읽고, 다른 코치님과 현역 선수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요즘엔 유튜브 등과 같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도 야구 공부를 하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가 많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공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접 내가 해본 후에 이해가기 쉽도록 훈련 프로그램으로 바꿔서 회원님들에게 가르쳐 드린다. 향후엔 운동역학이나 운동생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여 더 좋은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생활체육으로써 야구 산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

불경기의 영향으로 사회인 야구 인구가 예전에 비해 조금 줄어든 건 사실이다. 야구 연습장, 레슨장도 갈수록 늘어가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과거와 비교한 상대적인 수치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대표 스포츠는 야구. 프로야구의 인기는 매년 올라가고 있고, 독립리그와 실업야구도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유소년 야구를 비롯해서 여자 사회인 야구까지 새롭게 야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한 스크린 야구의 등장으로 야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채널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야구를 배우고 싶고, 트레이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계속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야구 산업은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언제나 나에게 야구는 동반자였다. 늘 함께했고 머릿속엔 야구생각 뿐이었다. 야구 때문에 기뻤고 야구 때문에 슬펐다.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줬지만 동시에 가장 큰 스트레스였기도 했다. 이제는 야구코치로서 새로운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 내 인생에서 야구를 빼놓고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

 

만약 야구선수를 안했다면 무슨 일을 했을 것 같나?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가까이 할 수 없었지만 만약 야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리면서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했을 것 같다. 자동차 디자이너 혹은 산업 디자이너 같은 직업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대학을 졸업할 때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러기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지금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 여유가 생긴다면 꼭 다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동생도 야구선수인 걸로 알고 있다. 형제가 같이 야구를 한다는 건 어떤가?

사실 아주 좋았다. 같은 운동을 하고 있었기에 동생과 늘 공감대 형성이 되었고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둘 다 투수였기에 야구의 기술적인 부분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한번은 동생이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단순한 격려보다는 아예 같이 밖으로 나가 같이 운동을 했었다. 그렇게 같이 운동하면서 대화를 하다 보니 동생도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씩 다스릴 수 있었고 얼마 후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마 둘 중에 한명만 야구선수였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다. 지금 동생은 군인으로 현역복무 중이고 제대 후엔 <야미사 아카데미>를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늘 한결같은 코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코치로서, 사람으로서 시간이 지나도 회원들에게 늘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그리고 아카데미를 찾는 회원들 대부분이 취미로 야구를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야구에 대한 즐거움을 더욱 느끼게 해주고 싶다. 다치지 않고 야구의 좋은 기억이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은 <야미사 아카데미> 2호점, 3호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좋은 트레이닝 환경과 다양하고 효과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 확장된 아카데미에서는 야구뿐만 아니라 줄넘기, 배드민턴, 인라인 등 다양한 실내 스포츠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야구 아카데미를 넘어 스포츠 짐(Gym)으로 키우고 싶다.

_전진우, 사진_김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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