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물감으로 그린 그림, 만나보실래요?
“자연의 물감으로 그린 그림, 만나보실래요?
  • 승인 2018.04.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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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누르미 작가 김수진


누구나 한 번쯤 책장 사이에 꽃잎이나 나뭇잎을 넣어두고 말려서 고이 간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활짝 피었다가 지는 것이 아쉬워 그 고운 자태를 간직하고자 시간을 붙들어 매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꽃잎을 말리고, 말린 꽃잎으로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드는 이가 있다. 꽃누르미 작가 김수진 씨다.

자연을 재료로 만드는 작품
꽃과 잎을 눌러서 건조시킨 것을 ‘꽃누르미’, 혹은 ‘압화(押花)’, ‘프레스드 플라워(pressed flower)’라고 한다. 사실 꽃누르미라는 말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수진 씨는 꽃누르미를  생소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쉽게 생각하면 어렸을 때 책장 사이에 단풍잎, 은행잎, 네잎클로버를 넣고 말린 다음, 코팅해서 책갈피로 쓰고 그랬잖아요. 옛 선조들은 문창호지에 나뭇잎을 붙여서 자연의 정취를 느끼셨다고 하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꽃누르미 작품을 보고 경험하며 자라왔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김수진 씨는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3학년과 4학년 과정에 꽃누르미 체험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나뭇잎을 채집해 오라고 한 뒤, 그 나뭇잎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자연스레 꽃누르미를 접하며 살아가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이 꽃누르미였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대중들이 꽃누르미 작품들을 볼 기회가 워낙 드물다. 현재로선 꽃박람회라든지 지역의 행사 등에서 전시된 작품을 보거나 체험 교실에 참여하는 정도가 꽃누르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들을 통해 꽃누르미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걸까? 먼저 재료인 식물이 필요하다. 주변에서 꽃을 채집하거나 꽃시장에 가서 직접 사오는 방법이 있다. 압판과 건조 쿠션 사이에 꽃을 넣고 벨트로 조여서 납작하게 누른다. 식물의 종류에 따라서 건조하는 기간이 다르다. 수국처럼 꽃잎이 얇은 경우에는 이틀이면 마르지만, 장미와 같이 꽃잎이 많은 경우에는 손질을 하면 3~4일 정도가 소요된다. 낙엽은 이미 어느 정도 수분이 날아간 상태라서 건조가 더 쉽다.
각 식물의 특징과 연출하고자 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처리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뜨거운 물에 넣는 ‘열탕 처리’, 파우더 형태의 약품에 넣는 ‘백화 처리’, 다리미 열을 가하는 ‘다리미 처리’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고온에서 열을 가해야만 그 색을 유지하는 꽃의 경우, 다리미 기법을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식물을 말리고 여러 과정을 거친 후,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꾸미고 배치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김수진 씨의 말에 따르면 “자연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평생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꽃누르미를 만난 거예요.”

꽃누르미의 세계에 이끌리다
김수진 씨가 꽃누르미 분야에 이끌린 것은 2007년, 30대 초중반의 나이였을 때다. 당시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시댁을 도와 가게 일을 하고 있었다.
“제가 꽃누르미를 시작한 지 12년 되었어요. 고양국제꽃박람회에 갔다가 우연히 꽃누르미 작품이 전시된 걸 보았지요. 꽃을 눌러서 작품을 만든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이거다!’ 싶었죠.”
김수진 씨는 오래전부터 꽃을 좋아했다. 그래서 막연히 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던 시절, 시간을 쪼개서 조화공예기능사 자격증 과정을 공부하기도 했다. 비록 자격증은 취득하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재료들을 활용하여 실제의 꽃과 유사한 모양을 만드는 일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20대 초반에 결혼을 했어요. 시댁에서 장사를 하시니 어느새 저도 장사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평생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꽃누르미를 만난 거예요.”

 

박람회에 다녀온 이후, 곧장 관련 강좌를 수강했다. 꽃누르미의 세계는 놀라웠다. 운전하고 다니면서도 길에 꽃이 보이면 차를 세워서 채집을 했다. 밤에는 꽃을 누르는 꿈을 꾸었다. 꽃을 압판에 눌렀다가 거둬낼 때면 저절로 마음이 행복해지곤 했다. 한마디로 꽃누르미에 완전히 사로잡혀 지냈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많이 어렸어요. 큰애가 초등학생이었고, 작은애가 4살 쯤 되었으려나. 저는 취미로 하기보다는 강사가 되고 싶었고, 또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보니 하루에 열 몇 시간씩 꼬박 앉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업을 하는 일이 허다했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홀할 때가 많았죠. 그 점은 가족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특히 남편이 마음 편히 작업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었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큰 흔들림 없이 지금까지 꽃누르미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몰입한 덕분에 김수진 씨는 목표한 바를 빠르게 이뤄냈다. 꽃누르미를 배운 지 1년 반 만에 강사가 되었고, 4년 만에 고양세계압화공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처음으로 강사가 되어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시작했을 때, 그때의 기분은 잊을 수가 없어요. 저에게는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거니까요. 눈물이 많이 났어요. 또 고양세계압화공예대전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감회가 남달랐죠. 제가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꽃누르미 작품을 보고 시작을 했는데 제가 그 박람회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으니까요.”

“운전하고 다니다가도 길에서 꽃이 보이면 멈춰서 채집을 했어요. 밤에는 꽃을 누르는 꿈을 꾸고요. 정말 꽃에 푹 빠져 지냈던 것 같아요.”

캘리그라피와 수묵
꽃누르미 작가로서 김수진 씨에게는 특별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꽃누르미 작품에 캘리그라피를 곁들인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먹을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제가 ‘글꽃누르미’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데요. 이건 글씨와 꽃누르미가 더해진 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 분야의 만남이기도 하죠.”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서기를 했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잘 썼던 김수진 씨. 펜글씨 자격증을 따며 글씨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녀는 한참 캘리그라피의 붐이 일어나던 2011년 무렵 글씨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꽃누르미 작업에 도입시켰다. 아름다운 꽃과 멋진 글귀가 한 데에 어우러진 작품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여 현재까지도 많은 수강생들이 김수진 씨의 꽃누르미와 캘리그라피 작업의 결합을 배우기 위해서 강의실의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또한 먹을 활용한 작품들은 무척이나 개성적이다. 다른 꽃누르미 작가의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조합이기 때문이다. 먹은 캘리그라피를 하는 그녀에게 보다 친숙한 재료였을 터다.
“꽃누르미를 연구하는 모임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신 분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그분의 작품을 보면서 먹이라는 재료에 매료되었어요. 배경을 굳이 식물로 다 채울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또 먹은 굉장히 한국적인 재료죠. 한국 사람들은 먹색을 보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되잖아요. 먹을 활용한 작업들을 이어나가다 보니까 많이들 좋아해 주시더라구요.”
캘리그라피나 먹을 활용하여 꽃누르미 작업을 하는 이가 김수진 씨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수진 씨는 이를 토대로 하여 눈으로 보기에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들도 다수 창작해 냈다.

“요즘 20~30대들은 핸드폰 케이스 등을 통해서 꽃누르미를 접하고 호기심을 갖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분야도 있다는 걸 알고, 생활 속에서 꽃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어요.”

 

대중들에게 다가가고파
지하철 안, 나란히 앉은 사람들이 각자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수진 씨의 2013년도 작품 <하이퍼커넥티드>는 소통이 부재된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가지 껍질 등으로 어두운 색깔을 연출해냈다. 2014년도 작품 <인생무상 새옹지마>는 장례식의 풍경을 담아냈다. 벚꽃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소녀의 영정 사진이 슬픔을 자아낸다. 갑작스레 닥친 죽음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꽃누르미 작품은 으레 밝고 예쁠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트린다.
“두 작품을 선보인 후 좋은 반응도 많았지만 비판도 받았어요. 사실적으로 표현해낸 것에 대해 놀랍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왜 자꾸 어두운 작품만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죠.”
호불호가 크게 나뉘었던 건, 그만큼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 아닐까? 꽃누르미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내고 있는 김수진 씨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그녀는 꽃누르미 분야를 일반 대중들에게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책 발간을 준비 중이다.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꽃누르미 책을 선보이고 싶어요. 꽃누르미를 하려면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또 채집한 걸로 어떻게 작업을 해나가는지 소개하는 책이요. 요즘 20~30대들은 핸드폰 케이스 등을 통해서 꽃누르미를 접하고 호기심을 갖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분야가 있다는 걸 알고, 생활 속에서 꽃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어요.”
그 다음 도전 과제는 ‘디지털 압화’다. 꽃누르미 이미지를 디지털로 작업을 해서 여러 가지 디자인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 역시도 꽃누르미의 대중화에 기여할 것이다. 꽃누르미라는 분야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는 건, 그만큼 이 작업이 의미 있고 가치 있기 때문이다.
“각시붓꽃은 하루 반나절 만에 지더라고요. ‘이렇게 빨리 질 줄이야’ 했죠. 백일홍처럼 100일 동안 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요. 꽃들은 결국 그렇게 시들어서 죽잖아요. 그런데 그런 꽃을 눌러서 그 색감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꽃누르미를 하고 난 후부터는 무심코 지나쳤던 들풀을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김수진 씨. 꽃의 이름을 알고, 자연의 소중함을 배워나가는 꽃누르미는 아름다운 작업임에 분명하다.


글ㆍ사진_남궁소담
작품 사진 제공: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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