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 택배박스 시장의 절대강자 박스포유(BOX4U)
오픈마켓 택배박스 시장의 절대강자 박스포유(BOX4U)
  • 김수진
  • 승인 2018.04.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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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마루 김이창 상무

 

어린 시절. 아버지께 항상 듣던 말이 있다. “너도 자식 낳아봐라. 그래야 부모 맘을 알지...” 지금은 중2 아들에게 기자가 늘 상 하고 있는 말이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알짜배기 기업을 이끌고 있는 김이창 상무. 그가 참 부러울 따름이다. KAIST와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여서가 아니고, 그가 만들어낼 새로운 혁신들이 부러워서도 아니다. 그저 아들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아버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말이다. 기사를 쓰는 내내 그랬다. 아들 사랑이 아들 걱정이고, 아들 자랑이 아들에 대한 미안함 이겠구나 말이다. 

오픈마켓용 택배박스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주)창마루. 회사명보다는 브랜드명인 박스포유(BOX4U)로 더 잘 알려진 이 회사는 철저한 고객중심의 혁신을 통해 택배박스 단일품목으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기업이다. 그리고 창마루의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이가 바로 김이창 상무다. 
지난 1976년 설립된 창마루는 올해로 43년째 골판지박스 외길을 걷고 있다. 설립자인 김영배 회장에 이어 1995년 2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권헌 대표, 그리고 2015년 입사한 김이창 상무까지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상무 직함을 달고 있으니 부모 잘 만난 덕에 편하게 호가호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반 회사였다면 대리직함도 달기 어려운 나이. 하지만 그는 직함만 상무일뿐 회사의 변혁을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지난 2년 여 그가 주도해온 경영혁신들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고 있는 부분이다. 

1976년 설립 이후 3대를 이어 골판지 박스 외길
Fnguide, Accenture, Deloitte 그리고 포스코. 김이창 상무가 창마루에 오기 전 근무했던 회사들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들과 굴지의 대기업까지 병역특례와 인턴십으로 짧은 기간 몸담았을 뿐이지만 골판지 박스를 만드는 중소기업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이력이다. 대한민국 상위 1%만이 입학할 수 있다는 KAIST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마친 그였기에 가능한 경력이다. 그것도 KAIST에서는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경영과학을 복수 전공했고 석사는 기술경영으로 이수했다.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전문화된 공정분석이 골판지 박스를 제작하는 중소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부모 잘 만난 게 아니라, 자식 잘 둔 덕을 보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터.  

KAIST와 서울대를 졸업한 산업공학 전문가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 창마루에 입사하고도 반년 이상은 갈등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생산성을 극대화시킬 방안들이 많았지만 이를 실제 공정에 적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학교에서 배운 이론들은 무용지물과 다름없었다.
“제약조건 하나하나가 생산성을 극대화시키기에는 너무나 큰 함수로 작용했고, 제약조건들을 해결하기 위한 투자 역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김이창 상무는 “무엇보다 공정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고 토로한다. 
정확한 공정 분석을 위해 기계를 운전하는 기장별로 작업일지를 쓰게 했지만 유용한 데이터는커녕 기장들의 반발만 심해졌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한들, 20년 넘게 기계를 다뤄온 기장들의 눈에 김이창 상무는 그저 이론만 아는 햇병아리로밖에 비춰지지 않았을 터다.
김권헌 대표의 서슬에 눌려 작업일지는 기입했지만 내용은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기입된 내용들조차 오차범위가 커 신뢰할 수 없는 수준.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들의 볼멘소리는 점차 커져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바쁜데 별 쓸모도 없는 작업일지까지 쓰게 한다’고 말이다.

이론과 다른 현실에 마음고생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KAIST는 그저 머리만 좋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영재들 중에서도 영재들만이 입학하고 그 영재들 중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만 졸업이 가능한 곳이다. 그리고 서울대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그가 취업 걱정 때문에 가업을 잇겠다고 했을 리는 만무하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가업을 이어가겠다는 책임감과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 현장에 적용시켜보고 싶다는 열정과 패기만으로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차가운 시선에 그도 점차 회의가 들기 시작했을 터. 화려한 대기업을 뒤로하고 화성의 외딴 공장 한 켠 에서 마음 터 놀 동기 한명 없이 직원들의 불편한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기에는 너무도 젊은 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그는 서서히 기장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결은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산업공학이 아닌 말없이 뒤에서 응원해준 김권헌 대표의 포석 덕분. 

아들의 조력자는 아버지의 포석
“기장님들을 한 분씩 찾아가 부탁을 드렸죠. 그리고 이 때 제 곁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은 분이 바로 성세일 공장장님입니다” 자신의 이론을 앞세우기보다는 기장들을 한명씩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 주요했다. 김권헌 대표의 운전기사로 시작해 영업 관련 업무를 수행하다 생산라인을 총괄하는 공장장에까지 오른 성세일 공장장은 김이창 상무가 창마루에 안착할 수 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등공신. 그리고 그를 김이창 상무의 든든한 조력자로 트레이닝 시킨 장본인이 바로 김권헌 대표다.

안전한 대기업 하청 대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김권헌 대표
1982년에 (주)창마루의 전신인 (주)동서포장에 입사해 1995년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권헌 대표는 2005년 창마루를 설립하며 골판지상자 전문제조 기업 최초로 온라인 택배박스 시장에 진출한 장본인이다. 동서포장은 삼성전자 수원공장에 백색가전용 골판지 박스를 27년간 주 거래로 납품했을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확보. 더욱이 롯데그룹과 오뚜기그룹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과 중견기업에도 골판지박스를 납품하던 실력자였다. 이처럼 탄탄한 사업구조를 영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픈마켓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했을 만큼 탁월한 선견지명의 소유자다. PC는커녕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는 요즘이야 오픈마켓의 성장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없겠지만 2005년 당시만 해도 안정적인 수요처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도전으로 비춰졌다.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선보인 2007년보다도 2년 전의 일이다. 더욱이 동일한 박스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백색가전과 달리 오픈마켓용 택배박스는 소량 다품종인 만큼 생산과 납기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프로세스가 요구됐다. 기존 거래처를 포기해야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다.

선견지명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오픈마켓 부동의 1위
하지만 오픈마켓용 택배박스 시장의 비효율적인 생산방식과 무질서한 유통구조로 인해 고객들의 불만이 쌓여가는 것을 본 김권헌 대표는 과감히 회사 전반의 시스템을 탈바꿈 시켰다. 대기업의 고질적인 갑질 문화를 뒤로하고 급성장 중인 오픈마켓에 회사의 명운을 건 셈이다.
하지만 창마루가 오픈마켓용 택배박스 시장에서 부동의 1위로 올라서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고객만을 연구하고 고객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뜯어고친 과감한 결단력 덕분이다.

최신설비와 첨단 물류센터, 당일배송에 수도권 직배송까지
소량 다품종에 최적화된 30여종 이상의 최신 자동화 설비로 220여종에 달하는 전 품목을 100% 직접 생산, 유통하고 있는 창마루는 정확한 수요예측을 통해 주문과 동시에 출하가 가능하도록 축구장 4.4개 규모의 첨단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경쟁업체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물류센터를 축소하는 것과 달리 오로지 고객만을 위한 투자였다. 이를 통해 하루 6회 출고를 시행하고 있으며 19시 주문까지는 당일 배송(수도권 직배송)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고객상담 업무를 아웃소싱하고 있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영업사원을 두지 않는 대신 CS조직을 본사 소속으로 대폭 강화했다. 고객서비스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다. 업계 최초로 자동견적시스템을 개발해 누구나 손쉽게 박스 견적을 산출할 수 있도록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다. 우체국 박스 대비 20% 저렴하면서도 강도는 30% 더 센 박스를 자체 개발했을 정도로 연구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자동견적으로 영업조직 축소, 고객상담은 정규직으로 강화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부모님이 물려주신 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킨 장본인이 바로 김권헌 대표. 경쟁업체들이 기술개발과 시장개척 보다는 대기업의 안색을 살피는데 집중하는 동안 시대를 앞서는 통찰력으로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한 셈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금쪽같은 아들이 가업을 이어가겠다고 했을 때 과연 기쁘기만 했을까? 창마루가 아닌 더 큰 세상에서 뜻을 펼쳐가길 바라지는 않았을까? 낡은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외로운 과정인지를 잘 아는 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권헌 대표는 김이창 상무의 선택을 존중했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아들을 지원했다.

자신의 그림자를 지움으로써 아들의 뿌리를 튼튼히
바로 자신의 자리를 비우는 것. 아직은 어린 새싹을 강렬한 뙤약볕 보다는 자신의 그늘 아래서 안전히 지키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부모의 그림자가 크면 클수록 아들의 뿌리는 빈약해지기 마련. 김권헌 대표가 회사를 지키고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직원들은 결국 김이창 상무보다는 자신을 찾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김이창 상무가 짧은 시간 회사의 실질적인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비결도 결국은 김권헌 대표의 혜안에서 비롯됐다. 뿐만 아니다. 김 대표는 아들을 위해 자신의 수족을 자르는 아픔도 기꺼이 감수했다. 바로 오늘의 창마루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자신과 젊은 시절을 함께 불살랐던 20년 지기 동지와의 이별을 선택한 것. 자신의 분신이자 그림자와도 같았던 전임 공장장을 대신해 김이창 상무를 위해 준비한 인재를 공장장의 자리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는 임직원들에게 김이창 상무를 중심으로 창마루를 새롭게 혁신하라는 선언적인 조치로 인식됐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확보로 생산성 극대화
하지만 김권헌 대표의 포석이 아무리 절대적인 묘수라 할지라도 이를 활용해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오로지 김이창 상무 본인의 몫. 낮은 자세로 기장들의 닫혔던 마음을 열어내자 작업일지를 통해 생성되는 데이터도 확연히 달라졌다.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2~3개월간 축적되자 김이창 상무가 학교에서 배운 이론도 진가를 발휘했다. 작업자의 컨디션이나 스킬에 따라 편차가 심했던 생산공정을 표준화할 수 있게 된 것. 20년 이상의 경력자들도 눈치 채지 못했던 공정 간의 불필요한 대기시간이 줄어들었고 이는 곧바로 생산성 향상과 직결됐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20년 넘게 기계를 다뤄온 장인들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믿어왔던 방식에 오류가 있었음이 명확한 데이터로 입증됐다. 김이창 상무의 능력을 모두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별도의 설비도입 없이 이뤄낸 성과였다. 더욱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취약점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새로운 설비들을 도입하자 생산성 향상 효과는 극명히 드러났다. 그리고 이를 통한 수익증가는 고스란히 직원들의 복지향상으로 이어졌다.

비용절감 효과는 고스란히 직원복지로
뿐만 아니다. 김이창 상무의 도전은 비단 생산성 향상에 국한되지 않았다.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잠들어 있던 창마루의 혁신 DNA를 되살렸다는 점이다. 2005년 김권헌 대표가 창마루를 설립하며 회사를 탈바꿈시켰을 때만 해도 직원들은 새로운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만큼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들의 도전정신도 어느새 잦아들기 시작했다. 변화에 조금은 둔감해진 것.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 더 변해야 하나?’라고 말이다. 젊은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하나 둘 보이지 않는 관습의 벽에 부딪히면서 창마루의 혁신 DNA도 서서히 기능이 퇴화되던 시점이었다.

잠들었던 혁신 DNA의 부활이 가장 큰 성과
하지만 김이창 상무가 20년 경력의 기장들도 엄두내지 못한 생산성 향상을 실현해내자 회사 내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당연시해왔던 모든 행동들에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 돌아보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장시 2중 밴딩 작업이다. 택배 물류센터 작업자들이 잡기 편하도록 손잡이를 만드는 이 과정이 시간과 인력은 많이 투입되는데도 불구하고 제품 파손의 원인으로 작용해 왔던 것. 하지만 정작 택배 물류센터에 가서 확인한 결과 전혀 무의미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직원들의 눈빛부터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반복적인 일들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직원들 스스로가 개선할 부분을 찾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회사 분위기 전반이 좀 더 밝아진 느낌 입니다”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이 직원복지로 연결되는 선순환의 고리가 작동하면서 잠들어 있던 혁신 DNA에 불이 켜진 셈이다.

김이창의 산업공학은 인재를 탈바꿈시키는 마법?
직원들의 기획에 대한 예상효과에 대해 끊임없이 측정하고 또 측정된 결과를 예상과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직관에 의한 아이디어가 아닌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저희 회사에 이렇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카이스트에서도 찾기 힘든 인재들입니다” 김이창 상무의 산업공학이 공정을 분석해 개선시키는 학문이 아닌 사실은 인재를 새롭게 탈바꿈 시키는 마법이 아니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김권헌의 창마루 VS 김이창의 창마루
아울러 김이창 상무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권헌 대표의 창마루가 오픈마켓에 특화된 골판지 박스를 가장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김이창 상무의 창마루는 고객인 쇼핑몰 운영자들을 보다 세심히 연구하고 이해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변화된 요구에 얼마나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느냐가 고객인 쇼핑몰 운영자들의 생존전략이듯, 창마루의 모든 시선도 고객을 향해 열려있다. 아직까지는 구체화된 사업모델이 정해진 바 없다. 하지만 생산공정을 면밀히 분석해서 최적의 해답을 도출해 내듯, 창마루의 고객들을 면밀히 분석하다보면 분명 고객의 성장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 사업모델이 마련될 수 있을 전망이다. 

100년 기업. 이제 60년도 채 남지 않은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은 김이창 상무의 아들, 어쩌면 그 아들의 아들까지도 가야할 길이다. 기자는 항상 묻고 싶다. “아버지는 어떻게 저를 견디셨어요?” 뽀뽀도 잘해주던 착한 아들이 언제부터인가 눈에서 레이저를 쏠 때 마다 말이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고민해야 할 길을 먼저 가본 아버지가 곁에 있는 그가. 너무 늦기 전에 먼저 살갑게 다가가 물어볼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글_안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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