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유(無釉) 장작가마의 맥을 잇다
무유(無釉) 장작가마의 맥을 잇다
  • 승인 2018.10.0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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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김영기

 
가마가텅빈날.

감각적인 생활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작가들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보는 이의 감성을 마구 휘젓는 어마어마한 매력으로 사랑받는 브랜드다. 또 경기도 이천의 사기막골 도예촌을 대표하는 생활용품 매장의 이름도 가마가텅빈날이다. 그리고 이 가마가텅빈날의 주인장은 같은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파워블로거 콩콩씨. 바로 김영기 도예가의 부인이다.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도예가 김영기보다는 가마가텅빈날의 주인장 콩콩씨가 더 잘 알려진 인물. 김영기 작가 본인은 사기막골 인근의 한 농장 작업실에서만 오롯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성을 입힌 생활도자기, 가마가텅빈날
“무유장작가마라고 하면 일본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한국에서 넘어간 기법이다.”
김영기 도예가는 대학에서 분청사기를 전공한 후 일본 고이에 료지 선생의 작업실에서 무유(無釉) 장작가마와 인연을 맺게 됐다. 한국과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2007년 지인의 도움으로 이천의 한 농장 한 켠 에 직접 장작가마를 짓기 시작했다. 4단으로 지은 장작가마지만 최근에는 2단으로 수정해 작업하고 있다. 10여 년의 세월동안 몸도 마음도 조금은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일반 장작가마와 달리 무유장작은 4박5일 동안 끊임없이 불과 씨름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이다.”
일 년에 단 한 차례만 가마에 불을 지피는 이유다. 물론 아직 국내에는 무유장작에 대한 수요자체가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다.

장작의 타고 남은 재가 켜켜이 쌓인 무유 장작
무유장작은 말 그대로 유약을 바르지 않고 장작으로 가마에 불을 올리는 작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는 고운 점토를 성형해 말린 후 초벌구이를 한 후, 유약을 바른 후 다시 재벌구이를 하면 완성된다.
무유장작은 초벌 후 유약을 바르지 않고 재벌 과정에서 장작이 타고 남은 재가 한 꺼풀, 한 꺼풀 달라붙어 유약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만큼 오랜 시간 장작을 지펴야 함은 물론 결과물도 예측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1년 동안 공들여 작업한 작품들을 고스란히 갈아엎은 적이 있을 만큼 사람과 불의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 바로 무유장작이다.”
왜? 굳이 유약대신 재를 날려야 하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예술이다. 표면도 거칠고 색도 탁하지만 불이 만들어낸 그 오묘한 형상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4박 5일간 불과의 사투로 탄생
“서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 이천에 작업실을 마련할 때만 해도 참 걱정이 많았지만 흔쾌히 동의해준 아내와 아이들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김영기 작가는 여전히 아내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이제는 자신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아내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도시생활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도예가의 아내로서 묵묵히 고생을 감수해온 부분도 고맙지만 사실 오늘의 가마가텅빈날을 있게 한 장본인이 바로 아내다. 중문학을 전공했지만 타고난 미적 감각을 활용해 생활소품들을 직접 목공예로 만들기 시작했고 DI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녀의 작품들도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김영기 작가의 도자기와 그녀의 목공예 작품들이 시너지를 얻으며 오늘의 가마가텅빈날을 있게 한 셈이다.

 도시생활을 떠나 함께 해준 아내와 아이들 덕분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가 이곳 이천에서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가며 자신 만의 일을 찾아준 것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인 큰아들과 중학교 3학년이 딸이 이곳에 올 때 만해도 둘 다 초등학생. 들판을 뛰놀며 메뚜기도 잡고 오이와 상추 등을 직접 따면서 자연과 함께 성장해 준 것도 어찌 보면 축복 같은 일상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모가 정착한 인도로 유학을 간 아들도 이곳에서의 생활에 큰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방학 때 마다 한국을 찾으며 아버지의 가마터에서 일과를 함께 하며 소중한 벗이 되어주곤 한다.
김영기 작가가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기에 앞서 일과의 대부분을 생활도자기 제작에 전념하는 이유도 결국에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무유장작이라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예술가이기에 앞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그는 공예가의 길에 더 충실하고 있다. 도예가를 떠나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김영기 작가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의 무유장작은 아직 찾는이가 많지 않지만 그의 생활도자기는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투자해도 그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중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예술가의 축복
머그컵이나 접시, 그릇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장작가마가 아닌 가스가마를 통해 만들어진다. 장작가마로는 일반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그의 작품들은 예술과 실용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농장 한구석의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가스 가마가 쉴 틈 없이 열기를 내뿜는 이유다.
막걸리 한 통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공예가
그러나 직장인들의 일과시간이 끝나는 늦은 저녁 그의 작업실은 또 다른 세계로 탈바꿈한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사랑방이자 그의 가슴속 꺼지지 않는 예술 혼이 잠시나마 숨쉴 수 있는 자유로운 공터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작품 활동을 함께 한 동료들, 후배들 또는 지인들의 소개로 이곳을 찾게 된 수많은 인연들이 막걸리 한 통을 손에 들고 모여드는 시간이다.
때로는 작품이야기, 때로는 세상이야기로 조금씩 자신들의 감정들을 풀어놓다보면 이곳에 쌓여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기 마련이다. 생계를 위한 작업이 아닌 장작가마에 넣을 기물을 위해 물레를 돌리는 시간도 이 때부터다.

후배들의 두터운 신망, 리더의 DNA

젊은 도예가들 사이에서 ‘영기형님’으로 통하는 그는 외딴 그의 작업실에서도 세상과 무던히 소통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랑방을 찾는 이들로 인해 세상사 모든 이야기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세상과 담쌓은 듯 그렇게 홀로 작업실을 지켜도 그 역시 세상을 향한 관심과 그리움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터. 이렇게 저렇게 흘러드는 이야기들 속에 조금은 무관심한 듯 조금은 냉정한 듯 던지는 한두 마디가 어쩌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그를 따르는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기자에게 그를 소개한 후배 역시 다르지 않다. ‘아직은 젊은 작가들이지만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언젠가는 도예계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다. 그만큼 도예가 김영기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막걸리 두 통을 손에 들고 그의 작업실을 찾은 또 한 명의 나그네처럼 말이다.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김영기 작가와는 허물없는 친구처럼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 서양화풍으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그는 기자를 대신해 한적한 작업실 한 켠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고 있었다.

예술가의 상상은 무죄, 상상 속에 잉태되어가는 그 만의 작품세계
가장으로서 잠시 꺼두었던 예술가로서의 희열도 이 때부터 빛을 내기 시작한다. 바로 상상의 즐거움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그의 상상속에선 수많은 기행들이 펼쳐진다. 마시던 막걸리통에 흙을 바르고 가마에 넣으면 언제쯤 불을 끄고 꺼내야 술병의 형태를 남길 수 있을까? 옷을 만드는 미싱 위에 흙을 채우고 굽게 되면 어떤 형상을 빚게 될까? 일본에서 수학한 고이에 료지 선생과 나누던 상상이다. 물론 그의 스승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90% 상상이 실패로 귀결되지만 나머지 10%가 세상을 놀라게 만드는 작품으로 거듭나기 마련. 그것이 예술이고 그것이 작가의 희열이다.
하지만 그의 상상은 아침 해가 떠오르면 또 하나의 스케치로 남겨질 따름이다. 작가의 상상을 밀어붙이기에 그의 일과는 또 다시 가족을 향해 바삐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우리가 오늘날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그를 전폭적으로 후원했던 구엘 백작이 있었기 때문. 늦은 오후의 햇살 때문인지 작업장을 타고 넘는 막걸리의 향기 때문인지 기자도 속절없는 상상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400여 년 전 일본의 총과 칼에 빼앗긴 불과 흙을 다스리는 힘. 이제는 되찾아 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동시대 최고의 기술력과 예술혼이 결합한 작품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불과 흙을 다스리는 동시대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 반도체 말이다. 물론 소재와 장비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말이다.
가우디의 구엘처럼 대한민국도 빼앗긴 예술혼을 되찾아 줄 누군가가 애타게 기다려지는 밤이다.

글_안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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