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흙의 시절'을 꿈꾸다
도시에서 '흙의 시절'을 꿈꾸다
  • 김수진
  • 승인 2018.09.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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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11 대표 백혜숙

이례적인 폭염으로 그 어느 해보다 뜨겁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갔다. 폭염이 남기고 간 흔적은 분명하다. 연일 계속되는 고온 현상과 가뭄으로 농작물은 타들어갔고, 이는 농산물 값 급등으로 이어졌다. 봄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여름에는 폭염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도시화와 과밀화로 인한 열섬 현상까지 더해져 기온이 더욱 급상승했다고 전해지는 바. 우리가 잃어버린 건 초록의 자연이 아닐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도시농업’을 목표로 도시농업 활성화에 앞장서온 사회적기업 에코11의 백혜숙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모두가 주인인 ‘웃는텃밭’

서울 송파구의 가락몰에 가면 도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낯선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숲을 배경으로 하여, 작은 텃밭이 조성되어 있다. 이 텃밭에는 여러 꽃들, 허브 식물들, 당근과 고추 등의 채소들은 물론 벼도 길러지고 있다. 도시 한복판에서 벼농사라니. 그야말로 신선한 발상이다. 이 텃밭의 이름은 ‘웃는텃밭’. 그런데 텃밭을 가꾸는 건 한 사람이 아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텃밭을 함께 일군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텃밭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중학생들이 직업 체험을 하러 오기도 하고요. 일반인 대상으로 하는 허브 기르기 강좌도 있어요. 은퇴를 앞두신 분들이 도시농업을 통한 인생 이모작 설계를 경험하러 발걸음하시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이곳 텃밭을 찾아와 작물을 기르는 행복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웃는텃밭은 한 사람의 텃밭이 아닌 모두의 텃밭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텃밭에 와서 때로는 위안을 얻고 희망을 찾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 텃밭을 운영하는 에코11은 ‘도시에서 흙의 시절을 꿈꾸는 사람’11명이 모여서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백혜숙 대표는 삭막한 도시에서 텃밭을 일구며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를 바란다.

도시농업에 뜻을 품다.

서울에 살면서도 늘 시골의 자연을 꿈꾸었다. 초등학생 때 방학이면 평택에 위치한 고모님 댁에 가서 깻잎이며 고구마 줄기를 따고, 때로는 개울가에서 놀았다.
“태어난 건 시골이었는데 세 살 때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런데 마침 고모님 덕분에 방학 때 만큼은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생활할 수 있었죠. 자연과 더불어 지낸 기억 덕분에 도시에서도 텃밭을 가꾸는 일을 하게 되었나 봐요.”
자연이 주는 행복이 좋아서 대학에서도 농업 관련 학문을 전공했다. 당시 잠사학과에 진학했는데 이는 잠사라는 분야가 가진 융합적인 매력 때문이었다.
“잠사학과에서는 식물에 대한 연구, 곤충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의류에 대한 연구까지 할 수 있었죠. 실제로 학교에 다닐 때에도 곤충학과라든지 조경학과와 함께 듣는 수업이 많았어요. 여러 분야가 융합되어 있으니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고, 또 제가 좋아하는 농업 분야라서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농업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일찍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관심 분야는 ‘교육’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건강하게 기를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 것이었다. 이는 비단 ‘나의 아이’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자라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여러 논문도 보고 사례도 접하면서 도시 아이들에게는 자연결핍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육아 전문가들이 아이들을 아무리 잘 키운다고 해도,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도시에서는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영양결핍이 일어나면 성장에 걸림돌이 되듯이, 자연결핍이 일어나면 그 또한 문제가 되겠다 싶었죠. 도시에도 숲과 공원이 있지만 굉장히 정적인 공간이잖아요. 자연과 상호작용하기는 어렵죠. 그러다가 텃밭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는 있지만 자연과 교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텃밭에서는 자연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내가 물을 주면 식물이 더 잘 자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상호작용을 하면서 사람과 자연 간에 교감이 이루어진다. 백혜숙 대표는 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은 텃밭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도시농업에 뜻을 품고 일을 시작했다.

텃밭이 가져온 변화
농학과 유아교육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백혜숙 대표에게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농업적 관점과 교육적 관점이다. 도시농업 프로그램을 만들 때에도 농업적인 관점에서 그치지 않고, 교육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 대상별로 어떠한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도시농업 프로그램을 통해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었다. 그중 하나가 도시 아이들의 변화다.
“요즘 과잉행동장애를 보이는 아이들이 많죠. 도시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기 어려워서 과잉행동이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그런 아이들이 텃밭에 와서 마음껏 뛰어놀고 자연과 교감하면서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산하니까 과잉행동이 줄어들었다고 해요.”
학교 폭력 가해자였던 학생이 텃밭을 가꾸면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른 사례도 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른들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를 성장 스트레스라고 한다. 하지만 도시 환경은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기는커녕, 더 큰 억압으로 아이들을 옥죄인다. 시골에서는 집 밖으로 나가 자연에서 뒹굴면서 뛰어놀고, 밭에 나가 작물도 뽑고, 개울가에 돌멩이를 던지기도 하면서 성장 스트레스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러한 성장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어, 학교 폭력이나 과잉행동장애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텃밭 가꾸기로 변화의 기회를 얻은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어른들 또한 텃밭을 가꾸며 의미 있는 변화를 맞이했다.
“텃밭을 가꾸고 나서 먹거리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는 분들이 많아요. 전에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면, 텃밭을 가꾸고 난 뒤에는 살아있는 생명을 먹는다는 귀중한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당근이 어떻게 성장해서 우리 식탁에 왔는지를 생각하면 쉽게 남길 수 없죠. 자연스레 식재료를 남기지 않도록 적당히 구매하게 되죠. 또 우리 농산물을 먹겠다고 다짐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 한 번 더 생각하죠. 크게 보면 삶의 태도가 바뀌는 거예요.”

노사발전재단 체험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도시농업

텃밭 가꾸기는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백혜숙 대표가 꿈꿔온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도시농업’의 구체적인 예시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허물어져가고 타인과의 접촉이 줄어드는 도시에서 텃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백혜숙 대표가 연구한 커피 찌꺼기로 만든 퇴비 덕분이다.
“에코11에서 커피 찌꺼기로 퇴비 만드는 법을 개발했어요. 도시에서 텃밭을 가꿀 때는 퇴비가 고민이죠. 냄새가 적게 나는 퇴비를 써야 하는데 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커피 찌꺼기로 퇴비를 만드니까 냄새도 좋을 뿐만 아니라 작물도 잘 자라고, 무엇보다도 퇴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 사람들이 연대하고 협력하여 공동체가 이루어졌어요.”
백혜숙 대표는 몇몇 지역에 커피 찌꺼기로 퇴비 만드는 방법을 전수했다. 그러자 지역에서 커피 찌꺼기 퇴비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였다. 동네 카페에서는 커피 찌꺼기를 제공했고, 텃밭 가꾸기에 관심 있는 주민들은 퇴비를 만들었다. 퇴비가 완성된 후에는 이를 주변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면서 환경 캠페인을 진행했다. 퇴비를 만들고 나누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당연히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을 터다. 그래서 백혜숙 대표는 텃밭을 통해 도시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와 농촌 간의 교류를 이뤄내기를 바란다.
“공동체지원농업(Community-Supported Agriclture)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미국에서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공동체에서 1년 동안 먹는 쌀의 양, 과일의 양, 이런 것들을 조사해서 우리의 먹거리를 농사 지어 달라고 농촌에 직접 의뢰를 하는 거예요. 소규모 농업인, 가족농, 이런 분들과 직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죠.”
공동체지원농업이 이루어진다면 지금과 같은 복잡한 유통과정이 단순해진다. 농민들은 판매 걱정을 덜고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고, 그만큼 우리의 먹거리도 건강해질 수 있다. 백혜숙 대표가 꿈꾸는 도농상생이다.

 

지역아동센터 텃밭교육
지역아동센터 텃밭교육

다시 흙의 시절을 꿈꾸며
에코11에서 ’은 11명이 모여서 만든 사회적기업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10(十: 열십 자) 더하기 1(一: 한일 자), 즉 흙(土:흙토 자)을 상징하기도 한다. 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도시에서 ‘흙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과연 흙의 시절이란 무엇일까?
“흙의 시절은 어렸을 때 우리들이 흙을 기반으로 뛰어놀았던 시절이자, 어르신들이 흙을 기반으로 해서 작물을 길러냈던 시절이지요. 도시는 소비의 공간이잖아요. 생산의 기회가 전혀 없이, 생산자가 만든 것을 돈 주고 사는 거죠. 그러니까 흙의 시절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생산을 하면서 생활을 했던 그런 생산의 시절을 얘기하기도 해요. 도시의 소비자들이 베란다의 화분이든, 집 근처의 작은 텃밭이든, 근교의 땅이든, 거기에 무언가를 심어 기르는 생산의 경험을 하고, 그로부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흙의 시절이죠.”
백혜숙 대표는 도시에서 흙의 시절을 꿈꾸어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가구 1텃밭’학교 1텃밭’기관 1텃밭’보급 활동을 한다. 만약 한 가정에 하나의 텃밭이 있다면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 백혜숙 대표는 가장 먼저 ‘가꾸는 즐거움’을 맛보게 될 거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반려식물이라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식물을 통해서 위안을 얻고 가꾸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요. 또 내 먹거리를 내가 기른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요. 텃밭에서 나는 작물은 가장 가까운 로컬푸드예요. 바로 수확해서 먹을 수 있으니까요. 사실 올해 폭염은 많은 걸 말해주고 있어요. 나중에 정말 환경적인 위기가 닥치면 먹거리 수입이 중단될 수 있어요. 그러면 국내 생산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있어도 먹거리를 구할 수 없을 지도 몰라요. 물론 그런 미래가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안 오리란 보장도 없죠. 그래서 한 가지는 가꿀 줄 알아야 환경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을 거예요.”
자연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던 아이가 자라나서 농업을 공부하고, 도시농업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과연 백혜숙 대표에게 농업은 어떤 의미일까.
“농업은 접하면 접할수록 정말 매력적인 분야예요. 맥가이버 칼처럼 만능이죠.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겨져요. 바로 농업이 가지고 있는 다원적 가치 덕분이겠죠. 저는 농업이 정말 재미있어서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한길을 걸어온 백혜숙 대표. 그가 디딘 흙에서 초록빛 희망이 싹 튼다.  

 

글/사진 _ 남궁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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