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일상의 대화처럼 읊어지는 세상을 꿈꾼다
詩가 일상의 대화처럼 읊어지는 세상을 꿈꾼다
  • 김수진
  • 승인 2018.10.09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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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대의 '짧고 쉬운 시'를 전파하는 서울 시인협회 회장 민 윤 기

Q. 본인의 직함이랄까? 하는 일에 대해 말해 달라.
사실 평생을 책 만드는 일을 해왔다. 기획자이자 편집자이고 잡지 발행인 등을 거쳤다. 물론 지금도 편집자이자 발행인의 자리를 고수 중이다. 다만 오랜 기간 매달려 온 여성잡지나 트랜드 매거진이 아닌 시 전문 잡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차이겠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Q. 여성지 전성시대의 편집장이 시 잡지를 만든다? 의외라고 보여진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자신이 아주 오래 전 정식 등단한 시인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본래 있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 시인이었으니까 좋은 시를 소개하고 발굴하고 또한 시인들의 활동을 잡지로 묶어서 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종의 ‘회귀본능’이라고 보았다.

Q. 지나간 이야기지만 여성잡지 시대 이야기를 조금 들려달라.
문학전집을 펴내는 출판사에서도 일했고 대기업의 사보를 기획하고 펴내는 일을 해보기도 했다. 이밖에도 방송 작가, 카피라이터도 했었고… 결국 글 쓰고 펴내는 일만 해왔다는 이야긴데, 그 중에서도 일반인들에게 가장 노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여성잡지 편집자로서의 일이었으니까 민윤기라고 하면 여성지 편집장이라는 식으로 알려진 게 아닐까? 레이디 경향이라든가 마리안느같은 당시로서는 잘 나가는 여성지를 만들어낸 시기가 여전히 내 직함과 경력의 큰 자리로 보여지는 모양이다. 남의 돈을 받고 일할 때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정작 내가 회사를 차려서 잡지를 냈더니 결과가 안 좋았다. 되레 스포츠 관련 단행본을 펴냈더니만 대박을 치기도 했다. 의외이긴 하다.

Q. 시와의 재회는 어떤 인연으로 이어졌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정식 등단한 시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어려운 시를 쓰던 사람이었다. 다만 열심히 쓰지 않았고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시인이라는 직업 대신 다른 것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게 아쉽다. 시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지만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 한 편이 적혀있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프로젝트에 발을 담그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와의 인연이 이어지게 됐다.

Q.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 한 편이란 당시 꽤 신선하게 보였던 게 사실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그 시초가 그다지 밝고 좋은 건 아니었다. 지하철에서의 추락사망율이 높아진다는 여론 때문에 그 방지차원에서 만들게 된 것이 스크린도어다. 일본만 해도 지하철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와는 좀 다르다. 성인의 허리 높이 정도? 즉 단순한 추락사고를 방지하려는 장치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비극적인 사고와 연관되어 있어서 크기도 크고 완전히 대기선과 전동차를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큰 차이다. 요즘은 부수적인 효과로 미세먼지를 차단한다는 기능도 있긴 한데, 어찌됐든 보기에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스크린 도어의 유리벽에 시 한 편을 붙여두고 기다리는 동안 읽게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그 시작이었다. 맨 처음 사당역에서부터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가 붙게 되었다.

Q. 스크린도어 시 한 편의 아이디어는 누가 제안했나?
두어 가지의 설이 있다. 밋밋한 유리벽에 시 한 편을 붙이면 좋지 않겠냐고 담당 공무원이 제안해서 그리됐다고도 하고, 실제 시인이 그런 제안을 했다고도 하는데, 내 생각에는 전자가 옳은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서울시장은 오세훈 씨였다. 내가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와 인연이 닿은 건 당시 등산 동호회를 운영 중이었을 때 오가는 지하철역에서 접하게 된 것이 그 출발이다.

Q. 이른바 지하철 시라는 것이 장르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게 현실인데, 사실 평가는 여러가지였다고 기억한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스크린도어에 붙은 시를 읽어보고 나 또한 생각이 여러가지였다. 그간 쓰고 공부하면서 접했던 시와는 아주 달랐다. 이게 시인가 싶을 정도로 수준이 낮은 것도 더러 있긴 했지만 의외로 괜찮은 작품들도 많았다. 이렇게 오가는 사람들에게만 읽히고 잊혀지는 건 참 아쉽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다양한 시를 지하철역에서 접하다 보니 뭔가 공통점이 발견되더란 거다. 아마도 그간 해왔던 일에서 익힌 감각이 발동됐다고 보는데, 이를 하나의 장르로 정리하면 뭔가 될 것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Q. 시기가 잘 맞았다는 의미라고 보는가?
그럴 수도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시들은 서로 닮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 우선 전동차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수 있을 만큼의 짧은 길이, 복잡하게 의미를 생각해낼 필요없이 평상시에 사용하는 문장에서 따온 산문적인 형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라는 것이다. 사실 어찌보면 이런 특징이 시 자체로 보았을 때는 크나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가 갖는 최대의 장점인 쉽고 짧으며 감성적이라는 면이 요즘 같은 스마트폰 시대에 딱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2~3줄에 불과한 짧은 문장을 모아 시집으로 펴낸 하상욱의 ‘서울 시’와 같은 시집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는 것만 봐도 세상이 달라진 게 분명했다. 일단 공모전을 통해 선정되어 각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붙은 시의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매년 책으로 펴냈다. ‘연간 지하철 시집’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에서 읽게 되는 시가 나름대로의 형식을 갖추게 되어 이른바 ‘지하철 시’라는 장르 그리고 ‘지하철 시인’이라는 호칭까지 쓰이게 되었다.

Q. 시를 잘 읽지 않는다고 알려진 우리나라 독자들에 대한 평가와는 상반된 느낌이 없지 않다.
딴에는 그러하다. 독서율이 낮으니 책이 잘 안 팔리고 당연히 시를 읽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공공시설인 지하철역에서 자연스레 시 한 편을 읽을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수천 명에 이르는 유명 무명의 시인들이 존재하고 시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는 게 바탕이 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긴 글을 읽지 않으려 하지만 문학적인 표현은 좋아하고, 또한 이를 매일 알리려는 SNS 사용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한편 좋은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성급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문학의 역사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사조 혹은 형식이 SNS시라는 이름으로 태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Q. 요즘도 시를 읽는 사람들이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참 아픈 질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소를 금치 못 할 내용이기도 하다. 으레 책이 안 팔린다고 알려져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도 나와있는 통계치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문학의 ‘불경기’에 전체 책 판매량은 줄었지만 시집의 판매량은 되레 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시인이 되고자 꾸준히 공부하고 실제 등단하는 시인의 수는 여느때보다도 늘었다. 또한 시인의 작품을 읽는 낭송회, 시작교실 등의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2,30대까지 고르게 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긴 해도 작금은 시의 시대라고 해도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시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커지고 있으며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Q. 좀더 깊숙히 들어가 보겠다. 지하철 시 혹은 SNS 기반의 시가 앞으로 문학에 미칠 영향은 어떨 것이라고 보는가?
시쳇말로 그들 만의 리그라는 게 있다. 또 문학이 권력이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는 지극히 현학적이고 문파, 학연, 지연을 통해 스스로 문학가라고 칭하는 사람들끼리 만의 영역을 만들어 일반인들이 문학에 다가서지 못하게 만든 적폐를 낳았다는 것이다.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이런 문제들이 결국 시를 일반인들과 멀어지게 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겠다. 상황이 어렵긴 해도 ‘시, See’라는 시 전문지를 매달 펴낸지 5년째에 접어들었다. 국내에 시 전문지로 나오는 것이 5개가 더 있지만 대부분 어려운 시 혹은 시를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게 걸림돌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쉬운 시, 대중을 위한 시를 근간으로 매달 전문지를 내놓고 있다. 결국 여기 등장하는 시인들의 상당수가 SNS를 통해 소개되었거나 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국립도서관에서도 SNS 기반 시인들을 위한 작품발표회를 열기도 하는 등 전통적인 문학계의 움직임과는 달리 좀더 일반 대중을 위한 시를 알리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Q. 한동안 3,40년대 한국 시인들의 미발표작 발굴과 같은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안다.
기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것인데, 일이 커져버린 셈이다.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과 유고 시집의 복간 외에도 생가 답사, 미공개 사진전시회 등의 작업이 이어진 바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내용과는 상당수 다른 사실들을 비교하여 기사로써 발표하기도 했고, 윤동주 외에 당시 활동했던 시인들의 미발표 작품들의 발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사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비록 작은 움직임일지는 몰라도 오랜 시간 쌓여 문학 예술사의 또다른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최근 해방전후 시인들의 집중적인 소개는 물론이고 익히 알려진 유명 시인들의 초판본 복각발행 후 엄청난 반응이 있었던 것은 아마도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관심과 함께 시의 열풍을 몰고 온 것 역시 시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일 예이겠다.

Q. 앞으로 시의 보급과 대중화를 위해 진행할 계획은 어떤 것이 있는가?
쉬운 시의 보급을 표방한 시 전문지 ‘시, See’가 서울 시인협회의 기관지 성격으로 전환되도록 하여 등단 시인과 시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로 키우고, 앞서 언급한 SNS 기반의 시작 활동과 커뮤니티 활동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시 전문매체를 추가 창간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새로운 개념의 시는 말 그대로 정답이 없는 새로운 장르의 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부담감이 적잖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시 문학계가 답습해온 장벽을 없애면 조만간 누구든 시와 친해지고 즐기고 또한 시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크다.
8,90년대 민윤기 서울 시인협회 회장은 내로라 하는 여성잡지의 편집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우리에겐 생소한 단어였던 웰빙이라는 개념을 여성잡지에 도입해 고급스러운 문화생활을 제안하는 앞서가는 문화 메신저로서의 위치를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스마트폰의 시대에 본업인 ‘시인’의 자리로 돌아와 누구나 즐기는 시의 천국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짧고 쉽게 써지고 읽힌다고 해서 그 가치가 덜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는 곧 마음이고 감정이며 아름다움의 표현도구로서 부족함이 없지요. 즉 작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한 면에 짧게 쓰여진 시 한 편은 그 어떠한 시집보다도 더 널리 읽히고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도구이며 가능성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성잡지라는 것은 천박하고 유행이나 좇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단숨에 무너뜨려 버리고 고급스러우며 문화와 사람 자체를 윤택하게 만들 수 있음은 물론이고 앞서가는 트렌드 리더의 강력한 무기임을 증명해 보인바 있는 그이기에 시를 통한 ‘문화혁명’이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되레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글_박중하, 사진_Jukerman Ba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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