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 가진 양철 장남감이 나를 사로잡다
따뜻한 마음 가진 양철 장남감이 나를 사로잡다
  • 박중하 기자
  • 승인 2019.02.12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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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틴토이 뮤지엄 관장 김성진

문화예술마을인 헤이리에 자리잡은 틴토이 뮤지엄은 국내외 양철 장난감의 전문 박물관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김성진 관장은 만 10년째 오직 양철 장난감을 주제로 국내 유일의 박물관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이다. 취미가 업이 될 경우 겪을 수밖에 없는 가지각색의 어려움이 남다르기에 사람들은 금기처럼 “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겠다. 그럼에도 요지부동 장난감, 그것도 양철 장난감을 오롯이 수집해 박물관까지 차린 그의 고집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궁금할 뿐이다. 아내와 부창부수 장난감 수집의 최고경지를 지켜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남자라는 동물은 꽤나 많은 금기사항의 요구를 받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뭘 하라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것이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남자의 습성이란 것이 뭔가에 빠져들면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이야기겠다. 오죽하면 이런 이야기도 있다. 남자들이 해선 안 될 취미를 꼽는다면 주색, 도박, 춤바람을 으뜸으로 치고 여기에 취미라고 하면 자동차, 시계, 오디오 기기의 수집이 그 뒤를 쫓는다. 문제는 이에 들어가는 비용 뿐만 아니라 ‘그것’ 외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가정도 가족도 딧전이 되기 일쑤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오디오 제작자인 하현상 선생의 예를 들어보겠다. 오디오파일, 즉 오디오 전문가를 굳이 ‘오도팔(誤道八)’이라고 부르면서 오디오라는 잘못된 길에 빠진 팔푼이라고 했으랴! 다만 이렇듯 개미지옥 같은 남자의 취미생활을 아예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경우도 있으니 꽤나 특이하다 하지 않을 없겠다. 이번에는 장난감이다. 누구든 마찬가지인 것이 어려서 갖고 놀던 장난감이란 가졌던 이가 어른이 되었어도 다시 만나면 금세 추억에 빠져들게 하고 심지어는 나잇값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끝까지 달리게 한다는 위험을 지녔다.

실제로 그리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더욱이 온갖 장난감들을 내려놓지 않고 아예 평생의 직업 삼아 끌어안고 박물관까지 지어서 살고 있으니 중증을 넘어선 환자가 아닐 없겠다. 사람 김성진이라고 한다. 틴토이 뮤지엄 관장이라는 직함까지 갖고 말이다. 남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틴토이(Tin Toy)란 게 무엇인가.

말 그대로 양철로 만든 장난감을 가리키는 단어다.

요즘 사람들이게 양철로 만든 장난감이란 낯선 것일 수도 있겠다.

충분히 그럴 것이다. 요즘같으면 으레 장난감이라면 플라스틱 같은 소재로 만드는 것이니까. 하지만 틴토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역사로 보자면 지금의 첨단 소재로 만든 것들보다 훨씬 오래된 족보에 오른, 장난감으로는 큰 어르신에 해당된다.

틴토이가 가진 특징이라면 어떤 것인가.

우선 틴토이는 기계로 찍어내듯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일이 손으로 두드리고 잘라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단 하나도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어찌 보자면 이게 참 벌이가 되기 힘든 제작과정을 가졌다. 성형하기 쉬운 재료이긴 해도 크기도 작고 꼼꼼한 마감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숙련된 제작자들이 매달려서 만들어야만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니까. 그렇다고 틴토이가 유행하던 당시만 해도 이것 역시 장난감이니까 큰 돈을 받기는 어려웠을 테니 품은 많이 가되 돈은 안 되는 숙명을 지녔달까?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은 양철 쪼가리가 아이들의 꿈을 자극하는 장난감으로 태어나는 것은 마치 마법같다고 보여지는 데, 장난감의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이 자체가 말 그대로 드라마같다.

장난감이 드라마 같다고 했다. 어떤 것이 그처럼 특별하다는 것인가.

하찮아 보이는 틴토이가 요즘은 귀하신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귀한 게 아니라 경매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정도로 그 가치가 높아졌다. 이는 전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하는 분위기인데, 틴토이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장 같은 곳에서도 틴토이는 중요한 출품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국내에서도 틴토이는 꽤나 주목받는 수집품으로 각광받게 됐다.

기왕에 이야기가 나왔으니 틴토이의 역사 배경을 소개해달라.

틴토이는 소재 상 나무나 직쿨로 만들어진 장난감 보다는 나중에 태어났다. 하지만 대중적인 장난감 소재로 쓰인 플라스틱 보다는 오래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틴토이는 1950년대가 전성기로 알려져 있다. 주로 유럽이 무대였는데, 집, 사람, 자동차와 같은 것들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틴토이라고 할 때 익숙한 모양새는 로봇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보다도 앞선 1930년대에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태엽과 건전지를 사용해 작동되는 방법을 적용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장난감으로 인기를 끌었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장난감이 나라 경제를 좌우할 정도였던 때도 있었다. 그 주인공이 다름아닌 틴토이였다.

굳이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양철로 만든 장난감이 나라 경제를 좌우했다는 표현은 지나치다고 보여지는데.

당연히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 된 일본은 장난감 수출을 통해서 경제재건에 총력을 기울였다. 말 그대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난감 산업을 키워냈다. 특히 틴토이가 그러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는데, 재질의 특성 상 어마어마할 정도로 노동집약적인 생산환경이 요구된다. 즉 작업자가 재료를 직접 펜치로 구부리고 조립해야 하는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자동화된 시설에서 기계에게 맡길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얇고 가공하기 쉬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작에는 품이 많이 가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틴토이는 기존의 장난감과는 달리 견고해 보이고 가볍고 보관 또한 용이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결국 틴토이는 노동비가 저렴한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보여졌는데, 실제로도 개발도상국이나 공산주의 국가들이 주 생산국이었다.

그렇다면 틴토이의 제작배경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아 보인다.

딴에는 그러하다. 당시 틴토이 제작공장들의 사진을 찾아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의 좁고 열악한 공장 안에서 빽빽하게 자리한 노동자들이 조그마한 공구 하나를 들고 틴토이를 만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요즘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들 작업환경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틴토이들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해야 옳다. 다만 그 고통의 결과물이 어린이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만끽하게 해주는 일종의 아이러니가 공존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란 돌고 돈다고 했는데, 틴토이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패전국 일본의 경제를 살리는 데에 일조한 틴토이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이제 경제대국이 된 일본은 그간 헐값에 수출했던 틴토이를 되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틴토이 복고붐이 일어났고 가격 역시 천정부지로 뛰었다.

틴토이의 매력을 이야기 해달라.

정교하게 기계로 만들어진 장난감과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사람이 손을 이용해 공구로 접어서 조립하는 장난감에게 정교함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틴토이는 그것이 바로 매력이다. 같은 모양새를 지녔어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도 같은 게 없다. 양철을 접는 힘의 세기에 따라 어떤 것은 날씬하고 어떤 것은 둥그스런 것이 뚱뚱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뿐만 아니라 표면의 인쇄상태도 제멋대로여서 늘어 놓으면 제각각이다. 이런 것을 두고 마니아들은 인간미가 넘치는 틴토이라고도 한다. 문외한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겠다. 다만 양철 역시 금속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좀 특이하다. 차가운 느낌이라기 보다는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흥미로운 점을 또 들어보자면 영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견 단단해 보이는 플라스틱 장난감들이 의외로 오래 보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플라스틱이라는 것이 산화되기 시작하면 쉬이 바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하고 엉뚱하게 생긴 틴토이가 되레 햇빛과 습도만 잘 조절해서 관리하면 대를 물려도 될 만큼 튼튼하는 건 수만 가지 틴토이의 장점들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놀랍지 않은가?

돈이 된다고 보는가?

돈 이야기를 하면 내심 걱정된다. 장난감이라는 것이 으레 동심에 호소하기 마련인데, 나이 먹은 어른들이 수집가라면서 닥치는대로 모아들이고 가격을 올리는 데에 앞장서고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비난받을 수도 있어서 말을 아끼게 된다. 다만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돈이 된다. 예를 들어 50센트에 수출했던 국산 틴토이가 지금 수십 만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거래되는 게 현실이니까. 그것을 두고 돈이 되느냐고 묻는 거라면 분명 그러하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6,70년대에 한국 경제를 살리겠다고 수출길에 올랐던 국산 틴토이들이 머나먼 여행을 마치고 다시 귀환하고 있다. 그 종착점이 틴토이 뮤지엄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돈이 되어서 금의환향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럼 이제는 관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본래 장난감 수집이 취미였나.

아마도 수집벽을 갖게 된 데에는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머니의 취미는 골동품 수집이셨다. 무엇이든 모으는 성격이셨다. 강원도가 고향이신 터라 결혼 후 서울에 정착해서도 그 수집하는 취미는 여전하셨나 보다. 외할머니 댁에 고속버스 편에 뭔가 사서 보낼 때마다 작은 장롱이나 함지 같은 것을 구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하시곤 했다. 덕분에 고속버스 터미널에 물건을 찾으러 가면 버스 기사 님이 짐칸에서 온갖 골동품이 담긴 고무다라이를 건네주어서 집에 가져온 기억이 생생하다. 특이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 나이 친구들과는 달리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황학동에 나들이를 가곤 했다. 나이가 어렸을 때임에도 나는 어머니 생일에 예쁘게생긴 떡살을 사서 선물로 드리곤 했다. 아마도 그런 어린 시정을 지내면서 오래된 물건들에 대한 안목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수집하는 물건의 종류는 조금씩 바뀌어 갔지만 이제는 거의 틴토이를 비롯해 근현대사 관련한 수집에 집중하고 있다. 한때 올드카에 미쳐서 지금의 틴토이 박물관 한켠에는 온갖 종류의 자동차들이 가득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다 정리했다.

남자의 취미생활사를 보는 듯 하다.

크게 다르지 않다. 뚜껑이 열리는, 오픈카를 하나 사서 타고 다닌 것으로 사람들에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단지 특이한 자동차를 탔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그것을 구해서 복원하는 과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타고 다녔던 빨강색 폴크스바겐 MK1 골프 카브리올레는 파주시 광탄면의 한 비닐하우스 안에 폐차로 처박혀 있던 것이다. 그냥 좋았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 할 정도로 망가진 것을 구해다가 오랜시간을 들여 순정차로 복원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요즘 빈티지 붐이 일고 있지만 사실 빈티지는 단순히 낡은 것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에 탐닉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늘 새것처럼 유지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 습득과정이 더 큰 매력이다. 다만 돈이 안 되고 또한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런 일종의 수도과정이나 자기희생이 없다면 빈티지는 멀리해야 할 무서운 취미다. 올드카가 멋지긴 해도 그것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1년에 1달 이상 타기 어렵다. 나머지 11달은 수리하고 복원하는 데에 꼬박 투자해야 하니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남자들의 취미라고 했지만 이건 가정 파괴의 주요 아이템이다.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려면 남자의 취미는 멀리하는 게 좋다. 다만 다행스러운 건 아내부터가 그런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이해해주고 이렇게 틴토이 뮤지엄을 차릴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이건 분명코 행운이다.

배우자의 배려를 이야기 했다. 어떻게 만나게 됐나.

초등학교 동창이다. 당연히 동갑이고 함께 나이 먹어가는 사이다. 남들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한때 유행했던 동창 포털인 아이 러브 스쿨을 통해 아내와 만났다. 아내 이름은 이민영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아내는 그떄부터 내게 호감을 가졌다고 말하곤 한다. 같은 또래 아이들과는 좀 달라 보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덩치가 크고 말이 없어서 그 진중한 모습에 끌렸다고 한다. 다시 만난 건 서른이 넘어서 사회생활을 할 때였다. 이십여 년이 지났어도 다시 만나니 금세 친해졌다. 아내는 당시 외국계 회사에 다녔고 영어강사로도 일했던 재원이었다. 서로 궁합이 잘 맞았는지 틴토이에 한껏 빠져있던 나를 이해해주었고 더욱이나 틴토이 수집을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아내는 내 아군이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올드카 수집도 아내덕에 시작한 취미였다. 틴토이나 올드카나 사실 둘이 생김새든 성격이든 닮았다.

문화예술촌으로 잘 알려진 헤이리에 큼지막한 장난감 박물관을 짓고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시작은 어떠했나.

틴토이 뮤지엄을 헤이리에 연 게 2007년이니까 올해로 만10년이 지났다. 근처의 건물에 세들어 있다가 2012년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짓고 확장해서 다시 문을 열었다. 장난감을 주제로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헤이리에는 틴토이 뮤지엄 말고도 몇 개가 더 있다. 솔직히 더 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서로 경쟁하면서 특징을 살려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니게 될 테니 말이다. 운영을 위해서는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롭게 개관하고서 매달 은행원 2사람 몫의 월급을 주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매달 빚진 돈을 갚아 나가는 건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한다.

경매장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헤이리 아트옥션이라는 행사를 매달 셋째 수요일 저녁에 개최하고 있다. 본래 장난감 경매를 위해 시작한 행사였는데, 지금은 앤틱, 근현대사, 미술품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장난감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인 터라 경매를 장난감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경매의 의미보다는 동호회 모임 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곳 헤이리의 특징이 문화예술촌이라는 것 말고도 마을 주민들 간의 유대관계가 무척 돈독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서 멀지 않은 장래에 아트옥션이 마을 축제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될 것으로 믿고있다.

취미란 것이 업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관장 님의 삶을 살펴보게 되면 그 매력에 끌려서 수집벽을 갖게 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실제로 그러한가.

수집가의 삶이란 것이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부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주 고달픈 인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수집가가 되어보겠다면서 직업으로서의 가능성을 묻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조언이라면 취미로 즐기듯 하되 적정선을 넘지 말라고 말해준다. 즉 일반인처럼 직업을 갖고 생활하면서 수집은 취미로 즐기라는 이야기다. 흔히 ‘오타쿠’라고 하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 사회성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자기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위험하다. 또한 갖고 싶은 것에 꽂혀 인생을 거는 행동을 자제하라고 조언한다. 정말 위험천만의 행동이다.

패가망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옳은 표현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수집가들의 공통점이라면 대부분 소득이 남달리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롤모델로 삼게 되면 수집이 즐거운 게 아니라 괴로움의 나날로 이어지게 된다.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에서 수집을 하게 되면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것이다. 즉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즐기는 중용의 태도가 필수적이다.

그런 조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관장 님 역시 그런 유혹에 빠져봤다는 것 아닌가.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늘 유혹에 시달렸고 정신 차리기까지 오랜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젠 초연해진 상태다. 예를 들어보자. 일본의 유명 수집가 중에 기타하라 씨가 있는데, 어느 정도의 컬렉터냐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도 기타하라 씨의 장난감 한 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초고가의 컬렉션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혼자서 불쑥 수집가가 된 게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 어떻게 그리도 값비싼 장난감을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의 어릴 때 사진을 보자니 해답이 나왔다. 모든 게 아버지의 컬렉션을 이어온 것이다. 그저 가진 것만 보았다가는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다.

물론 그렇게 중용을 지킬 수 있다고 하지만 부럽긴 할 것이다.

당연히 부럽다. 만약 내가 기타하라 씨처럼 일본 틴토이에 매료되어 이에 집중했다면 아마 지금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됐거나 쫄딱 망하는 둘 중 하나의 인생을 맞이했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양갈래 길에 서본 적이 있다. 즉 재테크를 위해 일본 틴토이를 모을 것인지 아니면 비록 여전히 저렴하고 돈이 안 되는 수준에 머물러있는 국산 틴토이를 모을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서보았다는 것이다. 기타하라 씨가 이미 일본의 틴토이를 모두 모았으니 나는 좀 색깔을 달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산 틴토이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같은 결심이 결국 기타하라 씨는 갖고 있지 않은 국산 틴토이를 모두 갖춘 박물관을 세울 수 있는 명분도 생겼고 현존하는 국산 장난감의 거의 모든 것을 갖출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 보람이 더 컸다.

틴토이 전문 박물관으로서의 계획이 있을텐데.

개인 박물관의 성격은 규모가 작다는 것이지만 운영하는 사람의 전문지식이나 열정은 대형 박물관이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기도 하다. 빈티지 붐에 힘입어 틴토이 로봇이 텔레비전 광고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시대를 맞이한 만큼 틴토이는 낯선 장남감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보기만 하는 데에 그친다면 장난감 만이 지닌 매력이 반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체계적으로 틴토이 만의 도록을 만들 계획도 갖고 있고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또한 내 전공이었던 일러스트 재능을 살려 직접 만져보면서 수집하고 또한 그림도 그려서 나만의 틴토이를 만드는 작업도 진행할 생각이다. 여전히 틴토이 뮤지엄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아내가 아이를 업고 함께 장난감을 구하러 다니던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전문 장난감 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람이다.

모두에 남자의 위험한 취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자칫 분수를 모르고 빠져들었다가 취미가 아닌 괴로움의 나날을 보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틴토이 뮤지엄의 김성진 관장의 삶을 들여다 보자니 남자의 취미도 충분히 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저으기 놀랍기까지 했다. 다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주변환경이 잘 잦춰져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겠다. 남편이 무엇을 하든 내일처럼 믿고 이해해 주는 배우자가 우선이요, 매달 은행원 두 사람 몫의 월급주는 것 같은 경제적 압박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을 유지하는 호방함이 필수다. 이 밖에도 수십 수백 가지 요건이 있겠지만 어느 것 하나 모자라다면 그저 소소한 취미로 만족하며 사는 게 낙이 아닐까? 세상에는 틴토이 뮤지엄 김성진 관장처럼 사는 사람이 하나쯤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다. 혹시나 내가 겪었을지 모를 뱁새 수집가의 괴로움을 대신 경험해줄 사람이니까 말이다. 허허. </박중하 -사진/Jukerman Ba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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