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랜 기억의 꽃 `조팝나무`
가장 오랜 기억의 꽃 `조팝나무`
  • 김수진 기자
  • 승인 2019.05.11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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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개벽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있는 사건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온 산하가 푸르러지며, 날마다 생명의 색이 페이드인 되어 누렇고 황량했던

세상이 찬란한 초록빛으로 변화하는 것이 천지개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계절의 변화가 없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이 축복을, 우리는

너무 당연시 하고 살아 그 의미를 깨닫는 것조차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의 변화는 시도하지도 않으면서 무엇인가 변화를 바라는 우리에게 시기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자연은, 남 탓만 하고 살아온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이제라도 개벽된 새로운 세상을 해마다 맞을 수 있는 축복에 감사하며, 우리 스스로 변화하여 좀 더 성실하고 여유 작작하는 삶을 추구하는 봄을 맞기를 기대 해본다.

아침마다 새로운 꽃들을 만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은 듯 메마르고 앙상했던 나무들이

잎을 내어 푸름을 더해가는 모습은, 부활을 현실로 보는 것 같아 힘들고 병마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도 이런 기적과 희망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생명의 달 5월이다.

 

지난 밤 잠을 잔 것이 후회 될 정도로, 아침이면 새로운 꽃들이 인사를 건넬 때 마다 반가움과 고마움에 가슴가득 행복을 느끼게 되는 5월은 말 그대로 계절의 여왕이라 부를 만 한 시기이다.

아집과 오만, 탐욕과 이기에 빠져 보낸 시간이 많았던 내게 세상은 왜 이리 큰 선물을 주는지, 내가 세상과 자연에 해 준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선물을 받으며, 부끄러움과 반복되는 반성과 후회의 쳇바퀴에 빠진 내 자신이 그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를 다짐해 본다.

어찌 되었든 바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도심의 가로수 가지 끝이나, 길가 작은 흙더미 에서 자라는 새싹을 보며 새로운 활기와 위로를 가득 받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무렵에는 온 천지가 야생 꽃으로 넘쳐 나는 시기여서 어떤 꽃을 대상으로 글을 써야하는지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조팝나무`는 이 시기에 도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중국이 원산으로 알려진 이 식물은 키가 1~2m 정도인 장미과에 속하는 식물이며 산기슭이나 양지바른 언덕, 논이나 밭의 돌무더기 등에서도 잘 자란다.

줄기는 짙은 밤색이며,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며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있고, 뒷면에 잔털이 있으며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꽃은 4월 중순부터 피어 5월초에 절정을 이루며 환한 흰색 꽃 4~5개가 산형꽃차례를 이루어 무리지어 핀다. 꽃잎은 5개이며 가지의 윗부분은 꽃으로만 덥혀있고 크기는 0.4~0.6cm 정도로 아담하며 예쁜 모습이다.

잎이 나기전후로 콩알만 한 크기의 하얀 꽃들이 수백 개가 무리지어 피는 모습에서 작은 좁쌀로 지은 밥을 떠올려 `조밥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조팝나무`가 된 것은, 이 꽃의 개화 시기가 어렵던 시절 보릿고개 시기와 겹쳐져, 예쁜 꽃의 이름에 까지 투영된 우리 선대가 겪었던 배고픔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지금도 가끔 `조팝나무` 꽃을 보면 하얀 튀밥을 묻힌 긴 막대과자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름대로 먹는 것과 인연이 있는 식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팝나무`는 약용식물로 더 유명하다. 나무에 `조팝나무 산`이라는 해열, 진통에 유용하게 쓰이는 성분이 있어 진통제의 대표 격인 아스피린의 이름이 버드나무에 있는 아세티살리실산의 `a``조팝나무`의 학술적 속명인 `spiraea`와 제약사 고유의 접미사인`in`을 합쳐 탄생한 것을 보면 그 약성을 짐작 할 수 있다.

꿀이 많아 양봉 농가에서 밀원 식물로 사랑받고 있으며, 도로변의 관상용으로도 널리 쓰이고,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쓰임새가 많은 식물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 들에서 보던 `조팝나무`는 꽃의 수도 요즘처럼 많지도 않고, 줄기도 곧게 자라기보다는 옆으로 덩굴 비슷하게 자라며 키도 작은 개체가 많았으나,

요즘 도심에서 보는 개체는 조경용으로 개량 진화되어, 키도 크며 줄기가 곧고 꽃이 무성한 모습이다.

야생에서 진화해 오며 병충해에 대한 내성도 강해 조경용으로는 아주 적합한 식물이 되어 주변에 흔히 보게 되었지만, 어릴 적 보던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던 꽃이 오랜 친구 같은 생각이 들어 더욱 그리워진다.

손자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을 때 창 너머의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화단에 핀 `조팝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던 모습의 콜라보는 가장 평온하고 인상적인 모습으로 가슴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필자에게 `조팝나무`는 특별한 식물이다.

내게는 가장 오래된 깊은 기억의 심연에 갈증이 있었다. 서 너 살 정도의 어린 시절 필자는 치악산 자락의 외가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그 시절 외증조부로 기억되는 흰 두루마기를 입으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지금은 택지로 바뀌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작은 봉우리 옆 논 가운데 돌무더기 사이에서 보았던 흰 꽃은, 나이가 들어 아이들이 초등학생 이었을 때까지도 이름을 몰라 항상 가슴속에 풀리지 않는 오래 된 매듭으로 남아 있었다.

힘든 일이 있던 날 밤 잠을 청하려 누웠을 때면, 이상하게도 그 하얀 꽃과 할아버지가 생각나, 알 수 없는 설움에 베개를 적시며 그리던 마음의 고향 같은 꽃이었다.

그 기억은 살아오며 겪은 여러 어려움으로부터 피난처가 되어, 나를 위로해 주고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와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며 나를 지탱해 준 버팀목 이였다.

그러던 중 30여 년 전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갔던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그 꽃을 마주하게 되었고, 명패에 있던 `조팝나무`라는 이름이 온 몸을 전율케 했던 기억이 있다. 대기업에서 중간 간부로 늘 쫓기듯 살아오면서 불안한 미래와 두 아이와 아내에 대한 책임감으로 일에 짓눌리고 술에 지쳐가던 나에게, 그것은 깊은 심해에서 폭발한 화산의 충격처럼 나의 내면의 잠을 깨웠다. 그 일을 계기로 야생 꽃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정신적으로 위안과 풍요를 갖게 해주고, 삶과 시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불안감도 조금씩 사그라지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 계기가 되어 내게는 은인 같은 꽃이 되었다.

 

정신을 치유하는 의사로 명성이 높은 레이첼 나오미 레멘 박사의 `할아버지의 기도`라는 책에서 저자의 외할아버지가 네 살인 저자에게 화분을 주며 매일 물을 주도록 했고 삼주 정도 지나 저자가 싫증을 느낄 무렵 새싹이 나오는 것을 보며, 생명에 대한 경외와, 성실함이 생명을 키운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의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글을 읽고, 34개월이 된 손자와 화분 두 개에 야생화 씨를 심었다.

녀석은 몇 번 물을 주어도 변함이 없는 화분을 보며 동요의 가락으로 `싹이 안 났어요~`하며 네 살배기 특유의 미운 짓으로 나를 웃게 하다가, 일주일 후 싹이 나자 신기한 듯 물도 주고 자주 보더니, 그것도 금방 시들해져 필자의 기대를 민망하게 한다. 하지만 화분의 싹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를 얻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명을 제 손으로 키워보며 스스로 깨닫게 될 여러 가지가, 손자의 가슴에 깊게 자리 할 것이라는 바람을 갖고 함께 화분을 가꿀 것이다.`

내가 그러 했듯이, 훗날 손자의 가슴 깊은 곳에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한 구석에라도 자리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작은 화분에 정성을 담아 물을 준다.<글-사진=김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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