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웠기에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비극을 30년 세월로써 치유하겠다
두려웠기에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비극을 30년 세월로써 치유하겠다
  • 박중하 기자
  • 승인 2019.06.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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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예술감독 권호성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수많은 대표작들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작품이 다름아닌 뮤지컬 ‘블루 사이공’. 이 작품을 연출한 권호성 예술감독은 기념작으로 다시 무대에 올려지는
느낌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분노, 역사 그리고 진실의 담론을 거쳐 이제 화해의 문 앞에 선 작품 ‘블루 사이공’의 숨은 주역 권호성 예술감독을
만나 감회를 들어 보았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30주년을 맞아 긴 세월동안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아온 뮤지컬 '블루 사이공'을 기념작으로 올렸다. 그 작품의 산파역인 권호성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을 만나 감회를 들어보았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30주년을 맞아 긴 세월동안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아온 뮤지컬 '블루 사이공'을 기념작으로 올렸다. 그 작품의 산파역인 권호성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을 만나 감회를 들어보았다.

한우물을 파다 보면 수먁이 터진다고 했던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겠다. 좋게 보자면 꾸준함에 대해 던지는 찬사겠고 달리 보자면 답도 안 나오는 상황에 용쓰는 상대를 안쓰러워 하면서 건네는 공허한 위로일지도 모르니까. 기실 이런 앞날이 막막하기만 한 것이 다름아닌 우리네 예술현장이라고 보자면 수맥이 아니라 물 한 방울이라도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면 복받은 사람이겠다. 그만큼 힘들고 처절한 게 예술계니까.
이런 척박한 땅에서 30년 동안 무대예술이라는 한 우물만 파고 있는 곳이 있으니 다름아닌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블루 사이공’은 이 극단의 전설처럼 불려왔던 게 사실이다. 더욱이 쉬이 보기 어려워 모든 공연예술 애호가들을 애타게 해왔다. 그 작품 ‘블루 사이공’이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30주년 기념작으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연히 ‘블루 사이공’의 탄생 주역인 연출가 권호성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늦게나마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직을 맡으신 점을 축하드리며 근황이 궁금하다.

여전히 적응하는 나날이다. 작년 12월에 부임했으니 7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최근까지 ‘나빌레라’를 공연했고 이달에는 ‘신과함께-이승편’을 올리고 있다. 물론 서울예술단의 예술감독이라는 자리에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든 공연예술인으로서든 6월의 의미는 남다르다. 익히 알려졌듯이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30주년을 맞게 되는 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극단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고 그만큼 시련도 많이 안겨준 작품인 ‘블루 사이공’을 기념작으로 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뮤지컬 ‘블루 사이공’이라고 하면 실제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더러는 이 작품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도 전해지기까지 했는데, 기념작 으로 올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정말 감회가 큰 작품이다. 기념공연으로 정해지면서 연출가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살펴보고 넘겨주었고 굳이 달라진 내용이 있다면 왜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죄없는 양민에게 총을 쏘아야만 했을까라는 대사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충분히 그내용을 유추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는 게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유명한 대사가 있다고 들었다. 외마디 절규랄까.

그렇다. 왜 양민을 죽였는지에 대한 대답 한 마디 “무서워서 그랬어!”라는 대사는 일견 설명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간에 걸친 개인적인 비극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괴롭힌 트라우마를 집약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겠다.

 

독백과도 같은 장면에서 작가로서의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익히 알려져 있긴 하지만 김상사의 트라우마는 베트남에서의 살육의 현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6.25전쟁 당시 어린 김문석에게 인민군 장교가 부역자들을 색출토록 지목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장면은 나이들어서 곧 죽음을 목전에 둔 김상사가 어린 김문석에게 묻는 대사면서 일종의 자기 고백의 과정을 담고 있다. “왜 그랬어?” 라고 물으면서 “무서워서 그랬지?”라고 독백하는 과정은 나이든 김상사가 어린 김문석을 이해하면서 화해하는 의미를 또한 담고있다. 이 부분은 그간 ‘블루 사이공’에서는 담겨있지 않았던 내용이다. 기념공연을 통해 처음 보여지는 것이기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직접적인 드러냄을 일부러 감췄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그 차이점이 드러날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역사적인 해석 혹은 화해의 제스처가 작품 전반에 큰 변화를 주었다고 보는가.

그간 역사의 단면 혹은 힘 그리고 흐름의 느낌 등이 현대사의 비극으로만 치부됐던 것이라면 이번 기념공연에서는 좀더 인간적인 면에 집중하고 디테일하면서 한편 축약시킴으로써 김상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자기고백을 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로서의 방점을 찍는 것이라고 봐도 좋겠다. 그것이 큰 차이점이다. 물론 이번 기념공연을 위해 음악을 두어 가지 추가한 것 도 있고 반대로 뺀 것도 있다. 그것 역시 작은 변화다.

 

알려져 있기로는 예술감독과 연출 하나에만 집중하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서울예술단 일을 맡으면서 행정적인 면에 치중하다 보면 불편한 점이 있지는 않나.

아마도 순수하게 연기만 했거나 연출만 한 사람이라면 그런 느낌도 들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이미 회사를 만들어서 경영도 해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관련 업체를 운영 중이고, 심지어는 한때 벤처기업도 해 본 적이 있어서 행정부분에서의 업무는 나름대로 ‘피폭자’가 아닌가 싶다. 경영의 어려움도 겪어본 터라 이 부분 역시 놓치고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쓴다.

 

듣기로는 서울예술단과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

이 또한 18년이나 된 인연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라는 작품으로 이미 서울예술단원들과는 잘 알고 지내고 있다. 더욱이 행정을 담당하는 팀원들과도 이미 스킨십이 지속되던 관계라서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을 맡았다고 해서 뭔가 새롭고 낯설거나 한 느낌은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는 행운이라고 봐야겠다.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직을 맡으면서 좀더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서울예술단은 민간기업이 아니라 엄연한 공공기관 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내가 처리해야 할 숙제들이 있 다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공연에 올릴 작품 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키를 쥐고 있 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긴 한다. 그 숙제란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서울예술단의 방향성 혹은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할수있다.예를 들어 국립오페라단이라면 오페라를 하는 곳이겠고 국립합창단은 말 그대로 합창을 하는 곳, 국립무용단은 무용을 하는 곳이지 않은가. 그럼 마찬가지로 서울예술단이라는 단체는 도대체 뭘하는 곳이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공연한 질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7~8년 전에는 가무극을 만들어 보자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럼 가 무극이 뭐냐, 뮤지컬을 하면 뮤지컬이 도대체 서울예술단과 무슨 관련이 있냐는 질문같은 것들과 끝없이 맞닥뜨려야 한다.

 

그렇다면 서울예술단의 활동에서 제약같은 것들이 있다고 보는가.

물론 창작극을 올리고 한국적인 것을 소화해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더욱이 그것이 관객들에게 사랑받아야 하고 검증까지 거쳐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것 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것이겠다. 뭔가 실험적인 작품을 올렸을 때에도 재단법인이기 때문 에 흥행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대로 흥행에 성공했더라도 그것이 만약 뮤지컬이라면 기존의 뮤지컬과 무엇이 다르냐고 질문이 들어왔을 때 명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것 또한 숙제들 중 하나다.

 

지난 6개월 간의 일정은 어떠했나. 분량에서만 보자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작년 12월3일에 취임했을 때 상반기에 3편의 작품, 하반기에 한 가지 작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윤동주, 달을 쏘다’를 다시 올려야 했고, ‘나빌레라’와 ‘신과 함께’를 이어서 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물론 작품들은 전부 1년 전에 이미 세팅이 되어있기 때문에 직접 연출한 ‘운동주, 달을 쏘다’ 외 에는 외부 연출가에게 맡긴 것이라 부담은 덜했다. 그렇지만 전체 업무를 관장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만만찮은 업무량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일단 ‘블루 사이공’ 하나에 매달리고 하반기 작품 하나만 신경 쓰면되는 거니까 날아갈듯 몸이 가벼운 상태다.

 

각기 작품을 연출하는 연출가로서의 입장과 행정까지 맡아야 하는 예술감독의 입장에서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다들 편안하다는 분위기다. 물론 내 앞에서 그리 말 하겠지만 말이다. 다만 관리자로서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지난 30년 동안 스태프들과 같은 위치에서 직접 작품을 만들면서 지내온 사이라서 특별히 달리 행동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늘 그래왔듯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아마도 일반적인 관리자가 아니라 함께 지내온 스태프였다는 동질감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그럼 다시 ‘블루 사이공’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다. 30 주년 기념작으로 올려진다는 것에 의미는 정말 크겠지만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 이라고 보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의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머리를 짜내어 비용 절감을 했다지만 기념작이라는 의미에 무게를 두다보니 예산에서 힘든 게 적지 않다. 그리고 특히 마케팅 부분에서의 어려움은 늘상 따라다니는 문제다. 서울예술단만 해도 대단한 능력을 지닌 마케팅 전문가들이 있지만 ‘모시는 사람들’의 경우는 작은 극단이고 보니 인력수급에 어려움이 당연히 뒤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늘 회자되는 것이 ‘블루 사이공’이다. 잊지 못 할 추억이 있다면.

뭐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이 워낙 많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베트남 파병용사 어르신들이 군복을 입고 단체로 몰려와 공연을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인 경우다. 이럴 때는 참 난감한데, 일단 모두 객석으로 모셔서 공연을 보고나서 의견을 주 십사 부탁드렸다. 결국은 모두들 이해하시고 되레 감동받으셨는지 감상을 마치고 군가 합창을 하고 돌아가셨다. 더러는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다.

 

이번 공연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클 것으로 보여지는 데, 감회를 들려달라.

이번 30주년 기념공연 이후에는 다시 볼 수 있을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일단 극단의 규모에서 볼 때 장기간에 걸쳐 올리기 힘든 대규모 편성이라는 점이 우선이겠고 또한 내용을 보았을 때 달달한 내용이 아니잖은가? 흥행이 어느정 도 보장돼야 만나기 쉬울 텐데 그렇지 않은 묵직한 주제의 작품이니 만큼 이번 공연이 아마도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 주변에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나부터가 마치 김상사를 마지막으로 떠나 보내는 심정으로 제를 올리듯 준비하고 있다. 한편 이번 기념 공연 이 6월15일 과천 시민회관 그리고 6월28일부터 30일 까지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오직 4일 간 열리는 터라 모든 객석표가 매진되더라도 되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올리는 것은 30주년이라는 의미 때문이다. 그 무엇도 그 의미를 넘어서지 못 하니까.지금껏 바보같다고 놀려도 묵묵하게 한길 만을 걸어온 극단이니 만큼 경제적으로는 ‘바보산수’를 하더라도 이번 만큼은 바보스럽게 하지만 기쁘게 ‘블루 사이공’을 올리게 됐다. 30주년이라는 한 마디가 정말 매직이었다.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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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산수’한다고 했다. 또한 ‘30주년의 매직’이라고도 했다. 예술하는 사람들 특히 극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30년을 버텨왔다는 것은 그저 큰 숫자로서 혹은 세월의 흐름으로만 보여지지 않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는 지극히 어려운 국내 극예술환경에서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테니까.

연출가 권호성은 서울예술단의 예술감독으로 앞으로 3년 간 몸담고 있는 단체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줄 참이다. 사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의심이 가지 않는 이유는 이미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대표작 ‘블루 사이공’이 마치 극단의 분신처럼 될 수 있음을 세월로써 증명했기 때문이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냥 가기 뭣해서 “가족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대답은 심드렁하니 “혼자산다”였다. ‘그래...저렇게 예술만 생각하는 사람이니 혼자 살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리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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