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온 설렁탕의 맛과 명성 속에 숨겨진 비밀을 공개한다”-김경호 중림장 대표
“대를 이어온 설렁탕의 맛과 명성 속에 숨겨진 비밀을 공개한다”-김경호 중림장 대표
  • 박중하 기자
  • 승인 2021.02.14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렁탕 하나 만으로도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림장. 50년 가까이 맛과 명성을 지켜온 데에는 안영자 할머니와 막내 아들 김경호 대표의 노력과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대를 이어서 중림장의 황금시대를 열어가는 김경호 대표에게서 최고의 맛이 있기까지의 숨겨진 사연을 들어 보았다.

설렁탕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십수 년 전에 들은 이야기다. 친구 하나가 소개로 만난 여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왔으며 특히 좋아하는 음식 취향이 닮아서 기뻤다고 했다. 그래서 그 친구는 동료들에게도 숨기며 혼자서 몰래 다니던 설렁탕집에 데려가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결과가 어땠을까? 그날 이후로 헤어졌다고 한다.

다음은 십년 전쯤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그날따라 설렁탕이 먹고 싶어서 단골 식당에 가기로 마음 먹었는데, 혼자 먹기가 뭣해서 후배를 불렀다.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는 후배에게 “중림동 충정로역에 내리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답했다. 자세한 위치정보를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후배는 알아서 잘 찾아왔으니까.

사설이 좀 길었다. 오늘 소개하려는 식당, 그 중에서도 설렁탕집 중림장 이야기를 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 우선 첫 번째 에피소드의 ‘슬픈 결말’의 후일담은 이러하다. 얼굴도 마음씨도 그리고 입맛까지 닮은 여인네였음에도 유독 그 설렁탕집에 들렀다가 헤어진 이유가 뭘까? 특유의 꼬리꼬리한 냄새 때문이었다는 거다. 두 번째 에피소드 역시 그 ‘냄새’가 이유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 충정로역 내리자 마자 냄새만 따라오면 중림장이다. 그러니 구차하게 몇번 출구로 나와서 어느 골목으로 들어오라는 식의 설명조차 필요없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두지만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의 실화라고 밝혀두겠다. 물론 믿거 나 말거나지만.

어떤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매주 한 번 안 들르면 몸이 찌뿌둥하고 기운이 없어진다”고 했고 또다른 이는 “중림장 들른 이후로 다른 집에는 도저히 못가겠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도대체 어떤 설렁탕을 내놓길레 이럴까?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 역시 중림장 외에는 다른 설렁탕집에 가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그러니 혹여 편견에 가득한 찬사가 나오더라도 그러려니 해주기를 당부드리는 바이다. 또한 솔직히 고백하건대 중림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기가 정말 싫다는 속마음도 드러내고 싶다. 왜냐? 나 혼자 먹기에도 아까우니까. 그게 이유다.

내심 안타깝지만(?) 요즘 중림장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노포 맛집의 반열에 들었다. 한동안 방송에도 나온 터라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종종 벌어지곤 한다. 중림장 마니아인 나로서는 그게 참 싫다. 기다리다 지쳐서 발길 돌리는 것도 싫거니와 남들이 마치 중림장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것도 듣기 싫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 보석같은 식당이니 말해 뭣하랴? 편집회의를 해도 늘 감춰두고 취재건으로 올리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 유행처럼  회자되는 맛집 기사들을 보니 화가 치밀더란 거다. 맛도 맛이지만 정작 깊고 깊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텐데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월간‘사람’ 8월호에 모시기로 했다. 중언부언 하는 셈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솔직히 내 스스로가 밉다. 왜 나 혼자 몰래몰래 즐길 수 있는 맛집을 남들에게 알려줘야 하는지 그러한 내 처지가 싫다. 허허..

사정이 이쯤됐으니 올해로 문을 연지 48년째인 중림장 문턱이 닳게 할 정도인 마니아라 자부할지라도 잘 모르는 이야기들 만을 담아보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또한 아는 만큼 맛이 더해지는 게 맛집 애찬론자들의 주장이고 보면 제대로 알고 먹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중림장 주인을 불러 앉혀 물어봤다.

중림장의 주인이라고 들었다. 누구신가.

김경호라고 한다. 중림장의 주인은 내 어머니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제는 막내 아들인 내가 맡아서 꾸려가고 있다.

중림장이라고 하면 당연히 주인 할머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데 아들이 주인이라니 의외다. 일단 어머니 이야기를 해달라.

내 어머니 성함은 안영자이다. 올해 89세다. 이곳에 중림장 문을 연 게 1972년도였다. 본래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던 분은 아니었다. 수원분이신데, 중림동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생선도매를 했기 때문이다. 중림동은 익히 알려진대로 노량진 수산시장이 생기기 전 서울에서 가장 큰 수산시장이었다. 그러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한옥집 두 채는 너끈히 살 수 있는 8백만 원이라는 당시로선 큰 돈을 선뜻 들여서 이곳 중림장이라는 설렁탕집을 열었다. 내가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때문인지 어머니는 정신력이 무척 강한 분이었다. 지금도 여전하시지만.... 사실 중림장 외에도 한식집과 산림청 구내식당까지 세 군데의 식당을 혼자서 운영했다. 지금은 몸이 많이 약해지신 터라 일선에서는 물러나셨다지만 여전히 관리감독을 하시는 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본래 중림장은 가족경영 체제로 알고 있는데.

어머니가 도맡아 하실 때까지는 그랬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셨는데, 어머니가 식당하실 때부터 둘째 누님과 형님이 함께 일했다. 나는 사실 식당일과는 관계없는 사업을 직접 했다. 여행사를 15년 정도 했다. 2006 년도쯤 리먼브라더스사태 때 환차손으로 너무 큰 피해를 본 터라 사업을 접고 중림장에서 어머니를 돕기 시작한 게 인연이 됐다. 물론그 때는 작은 누님과 형님 그리고 어머니가 중림장을 맡아서 꾸려 나가던 때다.

어머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겠다. 십수 년 넘게 중림장을 드나들면서 보아온 한창 때의 어머니 모습은 대단히 엄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서 가정을 혼자 이끌었다고 했던 것처럼 정신력이 대단히 강한 분이다. 또한 어떤 상황에 봉착해도 즉각적으로 대처할 정도로 드센 성격이신 터라 업장에서의 분위기도 정말 엄했다. 직원이 든 가족이든 가리지 않고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곧바로 꾸지람했으니까. 그 당시에 어머니에게 등짝 한 번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이니 짐작될 것이다.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중림장의 일에 합류했다면 올해로 만 10년이 훨씬 넘은 셈이다. 초창기로 돌아가 봤을 때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김대표가 어떻게 적응하게 됐는지.

어릴 때 가끔 업장에 들르는 것 빼놓고는 식당일이라고는 전혀 몰랐던 사람이다. 사업하면서 손님들을 모셔다가 대접할 때나 들렀을 뿐, 일을 하는 직장으로서는 난생 처음 접하는 분야였던 터라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 다만 내가 직접 사업을 했던 사람이었기에 무슨 일이든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바닥부터 익혀나가야 한다는 다짐은 이미 하고 있던 터였다. 새벽부터 나와서 걸레 들고 바닥 닦고 조리실 청소하고 허드렛일 마다않고 다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림장을 내가 혼자 다 맡아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집안일이고 직장이니까 그리했을 뿐이다. 하나하나 배우며 지내다가 3년쯤 지나고 나니까 어머니가 칼을 잡아보라고 하시더라.

 

어머니가 만 3년을 지켜보셨다는 이야기겠다. 칼을 잡으라고 했을 때 어떤 일부터 시작했나.

당시 중림장은 아침 7시에 문을 열었다. 출근하면 청 소 마치고 처음 하는 일이 대파 다듬는 일이었다. 30단 을 혼자 썰다 보면 아침이 됐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이 밖에 소꼬리를 따는 일도 혼자서 했다. 물론 칼을 잡는 다고 해서 고기를 자르는 건 그 후로 2년 정도 더 지난 뒤의 일이다. 그 사이에는 내가 고기를 붙잡고 어머니 가 칼로 자르는 일을 나눠 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무언 중에 가르쳐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앞서 적응하는 과정이 궁금했는데, 과연 그게 쉽던가.

당연히 그럴리 없었다. 그리고 내 경우는 이야기했 듯이 중림장을 일터로 삼은 사람이 아니고 손님들 중 하나로 여겼던 터라 나름대로 중림장의 맛에 대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래선지 수십 년을 두고 운영해온 중림장의 맛과 운영방식에 대해 손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였다. 그런 노력이 10년 동안 계속됐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 보자면 고기든 설렁탕이든 심하게 표현하자면 ‘문외한’이었을 텐데 노포이자 단골 많은 맛집의 변화를 꿈꿨다? 그건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맞는 말이다. 난 중림장에 오기 전에는 설렁탕을 어떤 고기로 만드는지, 어떤 식으로 끓이는지 조차 아무 것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저 손님의 입장에서 이런 게 다른 집보다 맛있고 특별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입맛만 지녔을 뿐이었다. 다만 잘  모른다는 것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옛 방식 만을 고집하는 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즉 손님의 입장에 서서 좀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하는 게 옳다는 철학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맛의 변화라고 본다면 대단한 모험이라고 보여지는데, 실제로 어떻게 그러한 시도를 할 수 있었나.

세상의 어떤 일이든 처음하는 일이라면 밑바닥부터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내 경우 고기와 관련된 게 그러했다. 정말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고기를 대주는 업자에게 매달렸다. 가르쳐 달라고. 긴 시간을 두고 고기에 관해 전반적인 공부를 했다.  부위와 맛을 결정짓는 방법에 대해 익히고 종류별로 다루는 방법도 배워야 했다. 운이 좋게도 중림장에 고기를 전담해서 공급하는 업자가 많은 것을 알려줬다. 일단 배웠으니 실행에 옮겨야 했지만 줄곳 벽에 부딪혔다. 옛 방식과 새로운 방식의 충돌이랄까? 다만 피하면 안 될 일이라는 판단이 섰고 그때부터 어머니와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간 중림장 설렁탕이 맛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단골들의 평가가 그러한데,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해달라.

엄밀히 말해서 맛은 그대로이되 특유의 냄새만 줄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워낙 중림장 설렁탕의 특징처럼 알려진 것이 꼬리꼬리한 냄새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냄새에 익숙한 오랜 단골들은 아쉽다고 하는 분 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좀더 많은 분들에게 중림장 설렁탕의 맛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 강한 냄새부터 잡아야 했다. 다만 그로 인해 본래의 맛이 변한다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꽤 많은 시간을 공부해야 했다. 다만 답이 금세 나왔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고 본다.

우스갯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중림장 설렁탕 특유의 냄새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그 냄새에 코를 틀어막는 신참내기 손님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것이 그 냄새였다. 당시의 골수 단골들 조차 처음에는 그 냄새에 당황해 하다가 회수가 더해질수록 그것에 익숙해진 경우였고, 지금의 단골들은 냄새보다 부드러운 육질과 진한 국물 맛에 매료되었다는 차이가 있겠다. 사실 냄새가 강한 설렁 탕을 내놓는 집은 중림장 말고도 서울에 몇군데 더 있다. 알고보면 그 냄새의 근원은 다름아닌 머릿고기에 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 뽈살이라고 불리는 소머릿고기로 국물을 낼 경우 그 냄새가 상당하다. 오죽하면 한창 중림장 설렁탕의 냄새가 대단했을 때 주변 상가에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민원을 넣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라는 게 일관된 불만이었다. 그게 요즘은 많이 없어졌다는 게 냄새로 인한 민원은 거의 없다시피 해졌으니까.

그렇다고 머릿고기를 안 쓸 수도 없잖은가. 다른 재료를 썼다는 이야긴가.

천만에.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조리방법의 문제였다. 즉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모든 문제가 핏물을 얼마나 제대로 뺐느냐가 관건이다. 중림장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쓰던 방식은 고기가 배달오면 곧바로 잘라서 삶는 일이었다. 손님들이 몰려오고 일할 사람이 많지 않으니 곧바로 삶는 것이 일상이었다. 본래 머릿고기는 삶았을 때 특유의 냄새가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핏물을 덜 빼고 삶으면 냄새가 진동하고 고기도 질겨지는 문제가 있었다. 물론 어머니도 알고 있었겠지만 작업과정 상 그리하기 힘들었기에 줄이고 생략한 게 결국은 마치 중림장 설렁탕은 냄새가 강한 게 특징인 것 처럼 여겨진 것이겠다. 알았으니 고쳐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렇게 하려니 어머니는 물론이고 누님까지 반대하고 나서서 설득하는 데에 무척 힘들었다. 설렁탕 한 그릇 파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야 한다니 문제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그 냄새를 좋아하는 데 왜 바꿔서 문제의 소지를 만드냐는 게 이유였다.

그럼 어떻게 이 반대를 극복했나.

가게문을 열면 우선하는 일을 고기의 핏물을 충분히 빼는 것으로 정했다. 흐르는 물에 몇시간이고 담가 서핏물을 빼고 그 다음에 삶도록 공정을 바꿨다. 물론 그런 작업에 워낙 반대가 심했기 때문에 새벽에 일찍 나와 혼자서 몰래 그 일을 해야만 했다. 핏물을 빼고 초벌로 삶고, 다시 꺼내어 물로 씻고 다시 삶는 방법을 수차례 반복해야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냄새를 잡기 전까지만 해도 중림장 설렁탕의 단골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자 마자 코를  틀어막고 돌아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이렇게 하다가는 큰일나겠다 싶었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마치 어머니 당대에만 장사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는 게 이유다.

 

재료 선별에서도 변화는 없었나.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작은 포인트들은 있었는데, 일화를 소개하자면 종종 그 냄새나는 설렁탕을 몰래 먹고가는 단골 중엔 백종원 셰프도 있었다. 처음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그 손님 이백종원 셰프구나 하고 알게 됐다. 그런데 방송 중에 육삼겹살이란 것을 소개하길레 그게 뭔가해서 고기공급하는 업자에게 물어보니 안심살 중에 아주 적은 양이 나오는 것을 두고 육삼겹살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마블링이 아주 훌륭하고 맛도 좋아서 적용해 보았다. 그랬더니 단골들도 좋아하더라는 것이 다. 그 정도의 차이 뿐이다. 최근에는 꼬리뼈도 추가해서 국물 낼 때 쓰고 보니 담백하고 고소함도 더해졌다.

메뉴에서의 변화는 없었나.

본래 중림장에는 설렁탕과 도가니탕 그리고 수육이 전부였다. 요즘은 꼬리탕과 꼬리수육도 더해졌는데, 이게 사연이 깊다. 저녁 안줏거리로 꼬리수육이 어떨까 해서 어머니에게 꼬리수육을 추가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맛도 없는 것을 왜 쓰냐?”고 극구 반대하셨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1년반이나 걸려서 허락받았더니 이게 대박이 났다. 더욱이 꼬리탕도 추가했더니만 여름철에 가장 많이 찾는 메뉴가 됐다. 사실 새로운 메뉴를 보태는 건 대단히 리스크가 큰 일이다. 더욱이 40년이 넘은 식당에서 새로운 메뉴를 보탠다는 건 모험도 그런 모험이 없다. 그럼에도 고집스레 이를 실행에 옮긴 건 다름아닌 내 경험 때문이었다. 본래 여행사를 했던 사람이니 세상의 온갖 맛있다는 식당에는 다 가봤다고 자부한다. 그런 내가  식당을 하는 데 맛없는 메뉴를 추가한다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서 꼬리 메뉴를 추가했더니 이젠 메인급에 해당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설득이란 게 참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설렁탕 냄새 잡는 것보다 수십수백 배 만큼이나 어려웠던 게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다만 그런 과정을 거친 끝에 어머니가 “괜찮네. 맛있다!”고 한 마디 하시면 그간의 힘듦이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끼게 된다. 40여 년을 어머니 혼자 터를 닦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다면 이제 예쁜집으로 꾸며야 하는 게 내 몫이라고 여겼다. 여전히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설렁탕 국물맛을 평가하고 수육의 맛을 평가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으시다. 다만 그런 모든 것을 압박이고 두려움이라고 보지 않고 아직 건강 하시니까 그럴 것이라고 여기니 되레 다행이고 행복감까지 느끼게 된다.

변화의 10년을 거쳤다고 보는데, 어떤 것이 큰 차이인가.

재료의 고급화와 마케팅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들 한우를 쓴다고 하는데, 무슨 등급을 썼는지 밝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득은 좀 덜 남더라도 가장 좋은 등급을 골라서 쓰고 있다. 또한 좀더 많은 분들에게 제대로 된 중림장의 맛을 알리고 싶다는 게 차이겠다. 다만 얼마 전 텔레비전에 소개가 되면서 호기심에 찾아온 많은 분들이 몰린 터라 단골들께 폐를 끼친 듯하여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리고 싶다. 한편 이제 중림장은 가족경영의 시대를 지나서 순수하게 2대째 물려받아 운영하는 노포가 됐다. 사실 그 과정이 꽤나 힘들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과정을 담고 있어서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어찌됐든 중림장은 오랜 단골들은 물론이고 새롭게 알게 된 고객들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설렁탕의 맛을 전할 수 있는 식당으로 거듭났다고 자부한다.

어머니가 그간 보여준 성격을 보자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것이 의외라고 보는데, 뒷이야기를 들려달라.

당연히 어머니는 찬성하지 않으셨다. 설득하느라 참 애먹었다. 그냥 가만히 서계시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그나마 촬영하는 데에 응하셨다. 방송출연이 갖는 의미는 내게 꽤 컸다. 단순히 인기몰이를 하는 식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자신있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보여주기 꺼려하는 주방 내부를 속속들이 공개 했고 재료든 조리과정이든 숨기지 않았다. 그만큼 새롭게 달라진 중림장의 거듭난 모습을 보여주자는 게 의도였다. 물론 이것 때문에 중림장의 모든 운영을 내가 혼자서 물려받고 가족경영을 교통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긴 했다.

올해로 48년째를 맞이했고, 김경호 대표가 맡게 된지 만 10년이 됐는데 고객 연령층의 변화는 어떠한가.

지난 10년 전엔 주 고객이 5~60대 어르신들이었다. 지금은 30대층이 상당히 늘었다. 앞서 소개한 여러가지 변화가 기반이 됐겠지만 이는 아버지 세대에 함께 들렀던 자녀들이 그 입맛을 잊지않고 성장해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들르는 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춰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서로 잘 맞아 떨어졌다고 본다.

 

하루의 일과를 소개해달라.

겉으로 봐서는 일반적인 다른 식당과 비슷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특이한 건 이틀에 걸친 작업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하루내내 겹쳐져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밤새 고아진 국물을, 또 한쪽에서는 오후에 나갈 분량을 처리하며, 또다른 쪽에서는 내일 나갈 재료들을 손보는 식이다. 이 모든 것이 마치 톱니바퀴 물려 돌아가듯 하는 게 일상이다. 오랜 기간을 함께 일한 가족 같은 종업원들의 손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편 국물을 내는 버너의 경우는 일 년 중 명절 때만 단 이틀 꺼지는 터라 다른 식당에서 몇 년 동안 쓸 것을 중림장은 6개월마다 교체해줘야 할 정도다. 24시간 363 일이라니 다들 놀라워 한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운영할 때를 더 놀라워 한다. 그때는 가스버너가 아니라 연탄 9장을 때는 아궁이로 그 많은 단골들에게 설렁탕을 냈으니 말이다. 요즘 같아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다들 장사가 된다 싶으면 프랜차이즈네 분점이네 세를 넓히는 게 수순이던데 중림장은 어떤 계획이 있나.

다른 건 몰라도 분점은 절대 불가다. 어머니의 고집이기도 하고 나 또한 마찬가지 생각을 갖고 있다. 이름이 알려지니까 전국에서 프랜차이즈를 하겠다고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사절하고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머니가 만든 틀을 가능한한 그대로 지키면서 맛과 품질만 높여갈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도 바쁘고 힘에 부친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난 어머니의 현재 상태는 어떠신가.

집에만 계시니 몸은 많이 쇠약해지셨다지만 목소리는 여전하시다. 그 뿐만 아니라 종종 전화로 지시사항 을 전달하기도 하시니 여전히 정정하다고 봐야겠다. 국물맛과 고기가 어떤지 보겠다면서 가져오라고도 하신다. 중림장에서 어머니는 현역이라고 봐도 좋다.

김경호 대표가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토대에 멋진 집을 짓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에 임하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새롭게 전개할 계획은 무엇인가.

예전에도 미미하나마 포장판매를 하긴 했다. 어머니가 맡고 계실 때도 가끔 포장손님들이 있었는데, 그때 만 해도 비닐봉지에 담아서 건네주는 식이었다. 요즘에 그렇게 담아주면 온갖 불만이 나올테지만 그나마 집에 가져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 이제는 제대로 용기에 포장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그 덕분인지 포장손님도 꽤 늘었다. 앞으로는 좀더 신경을 써서 택배판매도 해볼까 고민 중이다. 다만 업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똑같은 맛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필요할지에 대해 연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대형 식당과 달리 40여 년 동안 똑 같은 크기와 장소에서 영업해왔는데, 1년 동안 판매되는 설렁탕만 몇 그 릇 정도 되나.

15만 그릇정도? 물론 수육같은 건 빼고 그러하다. 몇 그릇을 파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15만 그릇의 맛이 늘 똑같아야 한다는 것에 책임감이 느껴진다.

끝으로 중림장 맛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단연코 재료와 손맛이다. 그게 전부라고 해야겠다. 기회가 된다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 국물을 우려내면서 고기 만큼 나오는 기름을 어떻게 제거 하는지, 도가니 뼈를 주방 식구들이 일일히 수작업으로 어떻게 분리해내는 지의 과정만  보더라도 중림장의 설렁탕과 수육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가족같은 종업원들의 손맛 덕분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

이런 이야기도 있다. 설렁탕을 좋아하던 늙은 어머니를 위해 아들이 늘 사들고 오던 것이 중림장 설렁탕이었다. 다른 식당에서 만든 건 도통 맛없다고 안 드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과 마주 앉아 2인분포장을 훌훌 들이키는 것이 낙이었다고 했다. 어느날 부턴가 아들이 포장 설렁탕을 사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중림장 종업원이 까닭을 물었더니 “함께 맛볼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포장 설렁탕을 사가지고 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다름 아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다.

중림장은 서울시 중구 청파로 459-1 (서울시 중구 중림동 468번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하철 2호선 충 정로역 4번 출구로 나와 한국경제신문사 옆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전화번호는 02-392-7743.

글/박중하 기자, 사진/Jukerman Bahk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