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에 얽힌 기억 ‘닭의장풀’
닭장에 얽힌 기억 ‘닭의장풀’
  • 김문기
  • 승인 2019.09.14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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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경 `닭의장풀`의 꽃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여름 꽃들이 시들고 가을 꽃 들은 아직 만발하기 전인 까닭도 있지만,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닮은 꽃의 색이 우리의 눈길을 끈 탓이라 생각한다. 특히 나비가 푸른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듯한 꽃의 모습에 매료된 당나라 시인 두보는 수반에 이 꽃을 키우며, 꽃 이 피는 대나무라 하며 즐겨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가진 식물이다.

아직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느끼는 선선한 기운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는 9월이다.

살아오면서 수십 번을 겪었을 계절의 변화에 대해 별관심도 없이, 추위나 더위에 대한 불편함만 토로하며 지내온 시간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시기이다. 계절과 자연생태는 수많은 변화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였을까. 세상에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없으며, 집착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들도 만족과 행복보다는 갈등과 고통만 남긴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기다려 준 것은 아닐 는지. 영원할 것 같고 아름답기만 한 남녀 간의 사랑이란 감정마저도 변하고 바뀌는 것을 겪으면서도, 아직도 가슴 속에 아집과 욕심이 남아 있는 것은 인간이 갖는 운명적 속성일까, 아니면 내 자신이 모자라고 수 양이 부족한 탓일까.

가을 초입에 저녁놀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사색에 잠기게 되는 여유를 누리는 것은, 계절이 바뀜에 따른 감상일 뿐만 아니라 나이 듦이 주는 작은 행복이란 생각을 한다.

이제 가을을 맞으며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의 한 시구처럼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이 하생략)’ 마음으로 차분히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이무렵이면 주변에 쉽게 눈에 보이는 꽃이 ‘닭의 장풀’이다. 닭의장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인 이 식 물은 습한 곳이면 산과 들 어디서나 잘 자라고 키는 20~50cm 정도이다. 꽃은 7월에서 10월초까지도 피며 야생화로는 드불게 푸른색이 예쁜 꽃이다. 꽃잎은 3개이나 아래쪽 꽃잎이 흰색을 띄고있어 2개로 착각하는 일이 많다. 꽃은 하루만 지나면 져 영어로는 Day Flower로 불린다. 수술 중 2개의 긴 것이 수정가능한 수술이고 작은 4개의 수술은 화분이 없는 수술로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는, 진화의 면에서 관심을 끄는 종이다. 잎은 대나무잎을 닮은 모습에 길이는 5~7cm 폭은 1~3cm 정도이며, 줄기도 연하고 속이 비어 있으며 마디가 있는 것이 대나무와 흡사하다. 줄기가 덩굴형태로 자라며 땅에 닿는 줄기에서 뿌리를 내리는 번식력이 좋은 식물이어서, 농부들에게는 성가신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습기를 좋아하는 특성에 맞게 장마기간을 거치며 크게 번성하여 커다란 집단을 이루기도 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고 꽃은 천을 물들이는 천연염료로 사용된다. 약성도 좋아 한방에서는 해열, 이뇨, 당뇨병, 신장질환, 천식, 위장 염 등에 약재로 쓰이며 민간에서는 종기나 땀띠, 옻올랐을 때나 뱀에 물린 상처에 즙을 내어 바르는 등 여러가지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식물이다.

‘닭의장풀’의 이름은 닭장 근처에서 많이 서식하는 풀이라는 `닭장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꽃의 모양이 닭의벼슬을 닮은 풀이란 이야기 등이 있으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전자가 더 정확한 어원인 것같다. 다른 이름으로는 ‘달개비’ 또는 ‘닭의밑씻개’, ‘계거초’등 닭과 관련된 이름이고, 생약 명으로는 ‘압척초’, ‘벽죽초’, ‘죽엽채’로 부르기도 한다.

9월경 ‘닭의장풀’의 꽃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여름꽃들이 시들고 가을꽃들은 아직 만발하기 전인 까닭도 있지만,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을 닮은 꽃의 색이 우리의 눈길을 끈 탓이라 생각한다.
특히 나비가 푸른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듯한 꽃의 모습에 매료된 당나라 시인 두보는 수반에 이 꽃을 키우며, 꽃이 피는 대나무라 하며 즐겨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가진 식물이다.

우리에겐 하찮은 잡초가 어느 시인의 눈에 이렇듯 귀하게 비친 것은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치와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꽃의 꽃말이 ‘짧은 즐거움’인 것도 아쉬움이 남는 지난 여름에 대한 여운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하루만 피고 지는 꽃의 운명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여, 이 시기와 특성에 잘 어울리는 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궁핍한 시기를 보낸 우리들에게 계란은 귀하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도시락을 열 때 계란프라이가 밥 위에 얹혀 있는 것 이 잘 사는 집 아이들의 상징일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다. 수학여행이나 모처럼 가는 기차 여행 중에도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이 삶은 계란이었던 시절이었던 것은, 요즘의 생각으로는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계란은 귀한 먹을거리였다.

필자의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닭장이 있다는 사실이 오리가 넘는 길을 가는 어린 발걸음을 가볍게 했던 기억이 있다. 닭장은 외가의 부엌에서 가장 먼 담장쪽에 있었고, 담밖으로 흐르는 하수도랑이 있어 닭장 안의 오물이 흘러나가며 늘 좋지않은 냄새가 났다. 예닐곱 마리의 닭이 있었고, 물고기 잡이를 좋아했던 나는 물고기를 잡으면 주로 닭에게 주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외할머니는 내게 고소한 계란 프라이를 주시곤 했다.

외가에 제사와 같은 일이 있거나 시내에 계시던 외할아버지나 친척분들이 오시면 내게 오는 계란은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계란맛의 유혹에 못이겨 몰래 닭장에 들어가 한 두 개의 계란을 몰래 먹고는 껍질을 눈에 띄지 않도록 주위에 무성한 ‘닭의장풀’ 속에 버렸다. 그러던 중 모든 손님들이 가시고 외할머니와 밥을 먹으려 상에 마주 앉은 날, 외할머니께서 닭구장(닭장의 외할머니 식 표현)에 쥐가 드나드는지 계란이 없어지고 닭구장풀 (닭의장풀의 외할머니식 표현) 속에 껍질만 있다고 말씀하시며 내 얼굴을 보시며 웃기만 하셨다.

부끄러움과 죄스런 마음에 얼굴이 빨개진 나는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닭의장풀’ 속에 버린 껍질을 치우러 갔다. 내 모습을 보시고 미소를 지으시며 다시는 그러지 말고 먹고 싶으면 얘기를 하라 하시던, 외할머니의 인자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껍질을 찾느라 뒤적이던 ‘닭의장풀’의 푸른꽃이 나를 보며 웃으며 놀리는 것 같은 생각에 발로 뭉개버리는 심통을 부렸던 기억도 아스라하다. 그 뒤로 닭장 안의 계란은 더 이상 줄지 않았고 ‘닭의장풀’도 더 이상 나를 놀리지 않았다.

꾸지람 보다는 사랑과 은유로 잘못을 깨우쳐 주신 외할머니의 그 현명하심은 어디서 온 것인지, 지금도 그때를 되새기며 삶의 자세를 가다듬곤 한다.

이제 손자를 돌보며 그 지혜를 본 받고 싶다. 어린이집에서 손자손을 잡고 오는 길에 가을하늘을 닮은‘닭의장풀’꽃이 핀 것을 본 손자는 ‘하부이 꽃이름이 뭐야’하고 묻는다.

꽃이름을 가르쳐 주며 이 녀석이 하부의 비밀을 눈치챈 것같은 자격지심에 헛기침을 서너 번 하게 되는 햇살 좋은 9월의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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