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화 명장 1호 ‘드림핸드메이드’ 대표 유홍식
수제화 명장 1호 ‘드림핸드메이드’ 대표 유홍식
  • 박중하
  • 승인 2021.01.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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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터줏대감을 찾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수제화 명장 1호 유홍식 장인이다. 올해 71세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그이는 여전히 현역임을 과시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를 만든 장본인으로 한껏 이름을 알린 유홍식 장인의 한 땀 한 땀 꿰어나가는 손길은 곧 우리나라 수제화의 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두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은 그이를 만나 ‘삶이 곧 구두’임을 확인했다.

무엇하는 사람인가.

이름은 유홍식, 수제화 명장 1호이다.

퍼머넌트 헤어스타일에 피케셔츠가 어울리는 꽃중년으로 보인다.

천만에. 올해로 71세이다. 남들 같으면 다 내려놓았을 나이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살아서인지 젊어 보이나 보다.

수제화와 인연이 닿게 된 건 무슨 연유였나.

내 고향은 전라도 광주다. 10남매에 아들만 여덟인 집안에서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한 집안이었다. 평범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어려서 부터 유독 공부하기 싫었다. 14살 때 집을 나와서 서울로 도망쳤 다. 그때만 해도 숨어버리면 찾을 수 없는 시대였다. 핸드폰도 없던 때였으니까.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다시 서울로 가겠다고 일주일 내내 아버지를 설득했다. 왜 공부가 싫어서 떠났냐고? 난 뭔가 만드는 게 좋았다. 그런 재능이 구두 만드는 것과 만난 것이겠다. 올해로 56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구두만 만들었다.

대부분 이쪽 분야의 일을 하는 분들은 어릴 때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택한 경우가 일반적인데.

그게 큰 차이일 수도 있다. 내가 정말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다시 태어나도 나는 구두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니까. 이 일이 너무 즐겁고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덕분에 화가로 4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아내도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다. 어찌 구두 만드는 것을 그리도 좋아하냐고 말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지치지 않고 즐기듯 하는 것일 게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했다. 꽤 놀라운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소상공인들의 삶이란 게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식이니까. 그런 부분에서 나는 꽤 운이 좋았던 편이다. 그저 구두 만드는 것만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물론 가진 재산이 많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 보다는 늘 공부하고 노력하며 일했기 때문에 꾸준히 고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이유다. 또한 내가 만든 구두에 대해 그에 걸맞은 가격을 매겼고 그게 정당하고 옳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모자람없이 일할 수 있었다고 본다.

구두 만으로 대규모 작품전을 가진 인물로도 알려져 있던데.

작년 10월 화가인 아내 노영애와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부부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아내는 한국화 작품을, 나는 구두로 함께 작품전을 가졌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구두 역사 1백년 동안 구두로 대규모 전시회를 한 사람은 나 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구두로 전시회를 하겠다니까 주변에서 그게 가능하겠냐고 의문을 갖던 사람들도 막상 예술작품으로서의 구두를 전시장에서 보니까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나 뿐만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긍지를 심어줄 수 있었다는 것과 후배들도 열심히 하면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가 비록 초등학교 밖에 못 다녔다지만 남들과 생각이 달랐기에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문일지 모르겠으나 유홍식 명장이 생각하는 구두란 무엇인가.

나는 구두를 ‘자유’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제자들이 그런 질문을 하길래 이렇게 답했다. 내 마음대로 어딜가든 만들 수 있고, 내가 상상한대로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자유롭냐는 것이다. 그리고 구두는 단순히 신발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예술작품이니 그에 걸맞은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만든 구두는 최하 45만 원부터 시작해 3~4백만 원에 이르는 것도 있다. 구두가격은 노력의 대가고 또한 작가로서의 자존심이다. 다른 수제화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도 그런 고집과 자존심을 지켰으면 한다. 구두가격이 곧 국민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을 일하다 보면 잊지 못할 고객들이 있을텐 데,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지.

언젠가 손님 한 분이 매장에 들어와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구두 10여 켤레를 꺼내어 신어보는 거다. 난 처음에는 다른 가게에서 샘플을 베끼러 왔나 싶어서 순간 짜증이 났는데, 이게 가격으로 치면 1천5백만 원이 넘는 금액이라서 더욱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손님은 자기 자신을 “유럽을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구두를 사서 모으는 게 취미”라고 소개하면서 한꺼번에 자기앞수표로 결제하는 게 아닌가!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놀란 건 그 분이 건넨 한 마디였다. “외국에서 정말 잘 만든 구두들을 많이 보았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뻤다”고 말하면서 “이런 재주를 혼자 갖고 있지 말고 반드시 제자를 키워서 우리의 수제화 수준을 높여달라”고 덧붙이는 것을 들으면서 등줄기가 쭈뼛해졌다. 지금까지 혼자서 작업하는 게 전부라고 여기던 내게는 참으로 충격적인 조언이었다.

 

주변에서 부지런한 제화명장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들었다.

성수동의 수제화거리 종사자들이 모두 부지런하다. 다만 굳이 내 자랑을 한다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면 작업실에 나온다. 그리고 주말이든 휴일이든 늘 나와서 일하는 것은 좋아서 그러는 것이기도 하지 만 무엇보다도 멀리 지방에서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 아서다. 특히 몸이 불편한 분이라든가 족형이 남다른 분들이 구두를 신을 수 없었다가도 나를 만나서 평생 처음으로 구두라는 것을 신을 수 있게 된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휴일이라도 쉴 수가 없다.

50년 넘게 오직 성공의 길만 걸었나.

그럴리가! 나도 언젠가 하는 일이 힘이 들어서 때려 치우고 고향에 내려가 다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쫄딱 망한 적이 있다. 빚만 19억 원을 지고 죽고 싶은 심정이 들었던 적도 있다. 아마 평생 직업을 마음대로 바꾸려고 했다가 벌받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막막한 상황에 친구 하나가 “다시 시작하면 잘 될 거다”라고 해서 마음 다잡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수중에는 단돈 7만 원과 스승님이 남겨주신 망치 한 자루 뿐이 었다. 그 망치를 아직도 쓰고 있다. 55년 된, 내게는 분신 같은 망치다.

돌아오니 어떻던가.

돌아와서 지금까지 19년째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았는지 돌아와서 첫달부터 돈을 잘 벌었다. 한 달에 7,8백만 원은 족히 벌었으니까. 다른 사람들 잘 때도 나와서 일하고 부지런하게 살았던 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바탕이 됐다.

 

이쯤에서 고생담 한 번 들려달라.

처음 서울에 올라와 명동에 갔더니 아는 형님이 구두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 좋아 보였다. 무작정 “일을 배우겠다”고 졸라서 눌러 앉게 됐다. 하루종일 일하고 밤에는 공장 시멘트 바닥에 가죽을 깔고 잤다. 일 못한다고 망치로 수없이 얻어 맞기도 했다.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후회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요즘에 매 맞으면서 배우라고 하면 큰일 나겠지?

큰 보람이라면 무엇인가.

아내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선 아내가 화가로 성공하기까지 공부시키고 후원해주는 데에 나는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가죽 꿰매고 못박으면서 2억5천만 원 가량 학비로 보탠 것같다. 그래도 힘들지 않았다. 구두 만들면서 그렇게 일하고 벌어서 아내를 위해 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면 자랑스럽다. 함께 전시회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태자면 내 딸 유현진이다. 내 딸은 일본에 가서 시계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지금은 인사동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가방과 내가 만든 구두를 판매한다. 가게 이름도 ‘구두방 시계방’이다. 독립적으로 자기 앞길을 열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늘 대견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어 온갖 매체를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대통령의 구두를 완성하기까지 세 번인가 직접 만났다. 많이 걸어야 하는 직업이니까 발이 편해야 하는 게 우선 조건이었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보안상 핸드폰으로 사진을 못찍게 하니까 함께 찍은 셀피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완성된 구두를 전할 때 선뜻 함께 사진 찍자고 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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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식 수제화 명장 1호는 최근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고 새로운 장소에 매장 겸 작업실을 열어 깜짝 놀라게 하는 이벤트를 가졌다. “혼날까봐 미리 말도 못 했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이의 표정에서는 불안감이 아닌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음에 기자 또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구두 만드는 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서 그 길을 택한 유홍식 명장은 바닥부터 시작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섰음에도 늘상 그랬듯이 새벽 5시면 작업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묵묵히 가죽을 꿰매고 망치질 하는 일상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언젠가 누가 말했듯이 좋아서 하는 일, 즐기며 일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못미더워 했지만 오늘 그런 사람이 실제 있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진정코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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