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개의 철사가 꽂혀 그림이 되다
수만 개의 철사가 꽂혀 그림이 되다
  • 편완식
  • 승인 2019.10.0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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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와 천의 찰떡궁합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김용진

작가 김용진(56)은 원래 20년 넘게 조각으로 굳은살이 박힌 사람이다. 어느시점부턴가 철사를 꼬아 캔버스 천에 꽂는 방식으로 부조같은 평면작업을 해오고 있다. 주로 철심들을 뭉텅이로 용접하여 그로테스크한 여자의 음부를 노출시키는 작업을 했었다. 에로티즘 조각의 극치를 보여주었지만 작가의 생활을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평면작업은 작가에게 하나의 타개책이었다. 조각요소를 지닌 평면작업이라 할 수 있다.

 

꼰 철사를 캔버스에 박아 형상화한 인물이나 기물, 풍경 등은 디지털 망점으로 그려진 모습같다. 철사의 조밀도에 따른 명암효과와 철사 고유의 녹이 어우러져 묘한 깊은 맛을 준다. 수 만개의 꼰 철사와 캔버스의 조우는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만들 수가 있지?”라며 혀를 내두르며 환호했다. 다들 김용진의 마력에 걸려들었다. 마치 한겨울 흰 눈 사이를 삐집고 나온 초목들이 형상을 만들어낸 모양새다. 생명의 울림 같은 것이다. 인물과 기물들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쇠와 천의 기발한 궁합이다.
지난 봄 작가는 강원도 고성산불로 집을 잃었다. 당시 그는 검게 불타버린 집에서 전시를 열어 화재를 모았다. 다행이도 불을 피한 작품들을 불탄 공간에 가져다 놓았다. 주위는 온통 화마가 지나간 자국들로 가득했다. ‘불탄 작가 작업실서 열리는 전시’라는 현수막이 내걸리지 않았다면 불난 집에서 간신히 꺼내진 물건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색 전시장 풍경이었다.


10여점의 작품들은 여기저기 검게 그을린 나무토막 등 불탄 잔해물에 의지해서 놓여 있었다. 기존 전시장에선 하얀 벽에 걸렸어야 할 작품들이었다. 중견작가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상당수 초기작품들은 아쉽게도 전소돼 사라져 버렸다. 최근 들어 그의 작품들은 해외아트페어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화재당시 작가는 통제선에 막혀 불타는 집을 멀리서 바라보며 발만 동동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보금자리이자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이 불속에서 시라진다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작가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모든 것들을 일시에 빼앗기는 절망이 엄습했다. 무력감이 온 몸을 지배했다. 이러다간 자신마저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붉은 불기둥에 가슴이 쿵쾅거려 어찌하지 못하고 그 밤을 꼬박 길가에서 서성거려야 했다. 주위의 작은 위로가 그나마 큰 힘이 됐다.


화마가 스쳐간 집 잔해도 하늘이 준 설치작품으로 받아들였다


작가는 긴박했던 당시를 지금도 담담하게 회상한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절망이란게 이런 것이구나 절감했습니다. 집과 작업의 터전이 불타고 있어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력감이 엄습했습니다. 제 모든 분신이 불길 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저 멀리 화염 속으로 달음질치는 느낌이었습니다. 불길과 연기가 지옥을 방불케 했습니다. 연기속에 희뿌연길은 지옥가는 길처럼 보였습니다. 미쳐버린다는 것이 이런 것일 겁니다.. 지인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너무나 참담했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었겠지요.
한참을 현장을 둘러 본 한 지인이 엉뚱한 제안을 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자. 처음엔 터무니없어 보였습니다. 작가로서 가장 슬픈 일은 창작욕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전시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왠지 생기가 돌고 위로가 됐습니다.
타다만 작품 몇 점, 화마를 피해 인근에 보관되어 있던 작품 서너점을 모아 타버린 작업실 공간에 놓아 보았습니다. 폐허의 아우라가 작품들에게 생동감을 더해주었습니다. 흡사 불탄 대지위에서 새싹이 돋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에 만족하지 말구 또 다른 도약을 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였습니다.
제 작품을 펼쳐놓으니 불길 속에 뛰어들어 자식을 구한 것 같았습니다. 전시랄 것 없지만 제가 다시 작가로서 설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았습니다 .
검게 타버린 작업실은 하늘이 선물해준 설치작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정이 찾아왔습니다.

 

절망의 장소에서 희망의 불꽃을 쏘아 올리다


불탄 집에서의 전시는 모든 이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전시물과 집 잔해가 어우러져 하나의 커다란 설치작품이 됐다. 불행의 결과물들이 희망의 메시지로 변신하고 있는 풍경이었다.
예로부터 불탄자리에 다시 집을 세우고 사업을 하면 훨훨 타는 불처럼 번창한다는 말이 있다. 작가는 부활의 에너지로 받아들였다.. 검게 타버린 집마저도 화마가 선물해준 설치작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그의 말은 비장했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그는 분명 하늘이 비워주셨으니 채워주시리라 믿는다. 전시는 그에게도 치유의 역할을 했지만 화마로 힘든 이웃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됐다. 예술이란 게 결국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그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화재 현장에서의 전시, 그것도 불타버린 집의 잔해를 배경으로 하는 전시는 소박하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불행의 결과물들이 희망의 메시지로 변신하고 있는 풍경이었다.
작가를 오래도록 지켜본 월간미술 황석권 편집장은 한마디로 요약해 지독한 작업이라 했다. 꼰 철사를 수도사처럼 캔버스에 수 만개를 꽂아가는 작업은 노동의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고를 무릅쓰고 작가가 구현하려는 것은 주로 인물과 기물이다. 인물들은 동시대 혹은 멀지 않은 과거에 살았던 이들이다. 마하트마 간디, 살바도르 달리, 프리드리히 니체 등 이른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거나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투쟁했던 이들부터 제임스 딘, 오드리 헵번, 스티브 잡스, 스티븐 호킹, 빌 게이츠 등 동시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들이다. 공통점을 이들이 신화화된 인류의 상징성이 강하다. 가령 비폭력의 간디, 반항의 아이콘 제임스 딘, 혁신의 스티브 잡스 등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각 인물과 대상을 설명하는 명료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한 면만 보게 하는 한계로서 작용한다. 작가는 이를 걷어내고 상징너머의 풍성한 인간내면의 아우라를 열어보여주려고 다. 달 항아리 등 기물도 매한가지다. 초월성을 부여해 새로운 영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진_월간사람

 


기본에 충실함은 근본에 이르는 창을 열 개 해준다


이주은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그림과 입체의 이중주로 평했다. “김용진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그림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입체이다. 밑그림의 ‘점’과 철사의 ‘선’이 모여 전체적으로 ‘면’을 이루는 것이다. 그는 캔버스 위에 하나하나 점을 찍어 철사 침을 심는데, 점과 점의 간격을 일일이 계산하여 밀도를 다르게 표현한다. 침의 생김과 높낮이에도 차별성을 두어 양감과 질감, 원근과 명암 처리를 해준다. 한마디로 김용진의 작품은 점, 선, 면이라는 미술의 기본 언어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저만큼 멀리서, 이만큼 가까이서 바라보는 지점에 따라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열린 감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감각적인 작품이 만연하는 시대에 작가의 우직함이 돋보이는 이유다. 몇 개월씩 캔버스 하나에 매달리다보면 때론 끝없는 수렁에 빠져들어 헤어남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 지점을 통과하다 보면 저 멀리서 일출처럼 한줄기 빛이 마중을 해준다.
한 번 꼰 철사와 두 번 철사는 농담효과가 달라진다. 적게 꼬였을수록 여백이 많아져 묽은 느낌을 주고, 많이 꼬였을수록 색과 농도는 짙어진다. 그런 수고스럽고 반복적인 작업을 감수함으로서 농담처리가 가능해졌다. 단순한 점묘회화를 넘어선, 입체화가 구현된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10월말까지 삼청동 갤러리 아트파크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작가는 말한다. 기본에 충실함이 근본, 본질에 이르게 해준다고. 장인같은 반복된 작업이 주는 선물이다.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서의 반복도 충실함에서 존재의미가 꽃을 피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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