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 인간失格에서 인간實格으로
「인간 실격」 , 인간失格에서 인간實格으로
  • 심장섭 문화산책가
  • 승인 2019.10.08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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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깡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엄마로부터 분리된 불안한 자아로부터 출발하여 아버지에게서 보편적 자아를 학습한 후, 이의 극복을 통해 자기만의 주체적 자아를 찾는 여정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엄마의 상상계(the Imaginary Order)에서 분리된 후 아버지의 상징계(the Symbolic Order)에 의해 지배 받으며 살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자가 만들어 논 환영, 즉 상징계를 벗어나 자신만의 실재계(the Real Order)를 발견하는 것이라며, 이를 돕는 일이 정신분석 임상이라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바로 라깡의 정신분석 임상 과정을 작품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언어철학을 이용한 자깡의 본격적인 정신분석 이론이 나오기 전인 1948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라깡이 이 작품을 분석하여 자신의 이론을 완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소설은 라는 화자의 서문,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인 요조가 쓴 세편의 수기 그리고 화자의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요조는 태어나면서부터 뭔가 다른 좀 별난 아이였다.

그는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할 뿐인, 이웃 사람하고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 거의 대화를 못 나누는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로써 익살을 생각해 내고, 이를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의 삶의 방어기제로 삼는다. 불안과 공포를 은폐하기 위한 그의 익살은 학교친구인 다케이치와 자살방조죄를 취조하던 검사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그의 젊은 시절을 장식한 안전한 마스크였다.

한편, 그는 여성들이 보기에 사랑의 비밀을 지켜줄 사내 같은고독한 냄새를 풍기는 남자인데다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소년이었다. 그는 수많은 여성 편력을 통해 세상에 적응과 도피를 반복하는 등 거대한 상징계에 휘둘리며 온갖 상처투성이로 얼룩진, 지극히 왜소하게 보이는 자신만의 실재계에 이르게 된다.

 

그가 만난 첫 번째 여성은 긴자에 있는 작은 카페의 종업원인 스네코였다. 무일푼의 그에게 조건없이 술을 주고 말없이 안아주는, 그와 같은 겁쟁이에게 행복마저 두렵게 만드는그런 여인이었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준 여인을 위해 다방에서 마신 우유 값조차 지불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굴욕감을 느낀 그는 여인과 함께 가마쿠라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다.

그의 두 번째 여성은 신주쿠의 잡지사에서 일하는 시즈코였다. 그녀의 집에서 정부 같은 생활을 하며 만화도 그려 용돈도 벌고 그녀의 딸 시게코를 돌보는 등 나름대로 세상에 적응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를 잘 아는 건달 친구 호리키의 비난에 무너지면서 다시 술을 입에 대게 되고, 결국 착한 모녀의 행복을 위해 그녀들을 떠나 다시 방황의 늪에 자신을 밀어 넣는다. 그는 다시 교바시 근처의 스탠드바 2층에서 정부 같은 처지로 지내면서 세상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 때만 이기면 된다고. 필요에 따라 얼마간은 뻔뻔하게 행동할 줄 알게 되었다고. 과학의 유령을 진짜인줄 알고 두려워하던 자신이 애처로워서 웃고 싶어졌다고

 

그러나 아직도 인간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해 떨치지 못한 채 술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그에게 나타난 세 번째 여성은 담배 가게의 17~18세 정도 되는 아가씨 요시코였다. 순진무구한 그녀와 결혼한 요조는 술도 끊고 열심히 적응하려 노력하나 그의 곁에 다시 나타난 호리키의 유혹에 다시 술을 마시며 반대말 놀이에 탐닉한다. 그러다가 요시코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회한과 낙담에 빠져 다시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치게 된다. 알콜 중독과 각혈을 하는 병자가 된 그의 앞에 네 번째로 등장한 여성은 약방 부인이었다. 그녀에게서 얻은 마약에 중독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된 채 정신이상자, 광인, 이마에 폐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그는 쇠창살에 갇힌 채, 더 이상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실격을 선언한다.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들은 그는 진정한 폐인이 된 채 정신병원을 떠나 온천지의 낡은 집에 십년이나 연상인 식모에게 맡겨진다. ‘테쓰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다섯 번째 여성이 수면제를 설사약으로 착각하여 그에게 준 약을 계기로 공포와 고통으로 얼룩진 기나긴 상징계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그는 독백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로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이다.”라고. 흰 머리가 눈에 띠게 늘어 마흔이 다 돼 보이는 스물일곱의 요조는 드디어 타자가 촘촘히 엮어 드리운 그물망인 상징계를 벗어나 행복도 불행도 없는자신만의 세계, 즉 실재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오직 순수함만을 갈망하던 여린 젊은이가 타인의 위선과 잔인함으로 파멸되어 인간 실격에 이르는 과정을 숨김없이 그려냄으로써, 인간 영혼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스스럼없이 드러내 오히려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주는, 현대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설정하고 이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정신분석 임상으로 설명하는 자크 라캉의 이론에 더 부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 소설은 고향을 떠나 천국을 찾아가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나 선재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통해 구도에 이르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또 다른 버전에 가깝다.

요조의 마지막 독백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거두며 마지막으로 뱉은 다 이루었다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싯달타가 6년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얻은 깨달음이나, 소크라테스가 수많은 논쟁 끝에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든가, 공자의 종심이나 노자의 의 경지가 자크 라캉이 말하는 실재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요지가 느끼는 진리, 즉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행복도 불행도 없는 세상이 곧 실재계를 지칭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이 소설이야말로 인간 失格을 통해 인간 實格에 이르는 구도여정을 그린 작품이라 주장하면 너무 견강부회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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