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의 추억 `여뀌`
고기잡이의 추억 `여뀌`
  • 김문기 객원편집위원
  • 승인 2019.10.0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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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벌레들의 청아한 합창 소리를 따라 10월이 왔다.

추수가 끝나 곳간마다 곡물과 저장채소가 가득해 농부들의 얼굴에 웃음과 여유가 넘치고

인심도 후해지는 풍요로운 시기이다.

사람이 활동하기에 좋은 날씨 탓에 10월은 여러 기념일도 많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야외행사도 많아 여러모로 분주한 때이기도 하다.

이제는 산업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계절이나 날씨의 변화에 영향이 없는 일을 하고 있어, 예전 농경사회에서 우리가 겪은 모습과 정서는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지난 일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기억에 자리한 다양한 먹을거리와 가을운동회, 소풍 등이 준 10월의 넉넉함은 잊히지 않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지난여름 더위의 고통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눈앞의 편익에만 집착하는 삶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계절의 귀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자연이 긴 동면에 들어가기 전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 단풍에 눈은 호사를 누리면서도, 곧 사라질 들녘의 생명들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횅해지고 알 수 없는 연민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아직도 헤어지는 것에 대해 익숙해지지 못한 내 성정 탓인가 보다.

밤이 길어진 이즈음은 밝아진 달빛 아래 벌레들의 노래를 들으며, 강물처럼 흘러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무상함으로 감상에 빠지는 밤도 많지만, 오랜만에 책도 가까이 하게 되어

많은 이들을 시인으로 만드는 사색과 침잠의 시기이다.

이 가을에 대부분의 식물이 결실을 맺듯이, 우리의 삶에도 무엇인가 작은 열매라도 맺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무렵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는 꽃이 `여뀌`이다.

꽃이 아주 작고 주로 습지나 물가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성가신 잡초로 여겨 우리의 눈길이 허투루 지나쳐 버리지만, 국화 종류와 함께 가을 끝자락에 만날 수 있는 꽃이어서, 예쁘지도 않고 볼품도 없으나 색다른 감상을 주는 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등 동북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는 이 식물은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길가나 습지, 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란다. 높이는 30cm~80cm 정도이며 줄기에 마디가 있고, 붉은색의 무늬가 있으며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친다. 잎은 버드나무 잎과 흡사한 피침 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털이 없다. 꽃은 7월부터 10월까지 수상꽃차례로 피며, 분홍색이나 흰색을 띄고 언뜻 보면 꽃이라기보다는 좁쌀크기의 열매처럼 보이고, 이삭은 5~10cm 정도이며

아래로 처진다. 다른 이름으로 요화, 수료, 천료, 택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잎을 씹으면 강한 매운 맛이 있어 맵쟁이, 매운여뀌라 하기도 하고 영어식 이름도 `water pepper`이며 학명도 `persicaria hydropiper (물가에서 자라는 후추라는 뜻)`라 하여 `여뀌`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름이 순수한 우리말이어서 정감이 가는 풀이지만 그 유래는 정설이 없어 전문가중 어느 분이 조사를 해주시길 기대한다.

`여뀌`는 종류가 많아 우리나라에 30여종이 넘게 서식하고 있고 매운 맛이 있는 종보다 없는 종이 많으며, 자연 상태에서 유사종과의 교배가 많이 있어온 탓에 필자도 자세한 구별에 어려움을 겪는 식물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산지나 들판의 습한 곳에서는 `개여뀌 `장대여뀌``이삭여뀌`가 많고, 물가에서는 `여뀌``털여뀌`가 주로 서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땅에 토종인 식물답게 민간에서 약재로 쓰이며 지혈작용, 혈관확장, 항균작용 등에 효과가 있고, 일부 매운 맛이 나는 종을 제외하고는 줄기나 잎을 식용으로 먹기도 한다.

물가에 집단을 이루어 서식하며 `고마리``부레옥잠`처럼 수질정화 능력이 뛰어난 식물이나, 독성이 있고 번식력도 강해 논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천대를 받기도 한다.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뀌`와 같은 식물들의 정화능력을 오염으로 황폐해져가는 우리의 환경을 되살리는 일에 널리 이용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돈이 되는 일에만 관심 갖는 유관단체와, 정파적인 판단에 따라 활동하면서 민의를 대변하는 양하는 시민단체나 환경단체들이 설쳐대는 요즘의 작태에 한숨만 나오게 된다. 사명감과 생명존중의 마음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활방식과, 오염된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회복시키는 연구와 사회적운동이 일상화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여뀌`의 독성 탓에 소나 염소들도 먹지 않아 어릴 적 놀던 물가에 `여뀌`는 늘 무성했다. 어린 시절 동네 형들과 논사이의 도랑에서 `여뀌`를 뜯어 바위에 올려놓고 돌로 찧어 물에 풀어 고기를 잡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고기잡이를 좋아했다.

지금도 일 년에 두 세 번은 물가를 찾아 낚시로 고기를 잡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잡은 고기는 모두 방생을 하고 오지만 물속에 있는 생명을 낚을 때 손에 전해지는 생명의 움직임은 짜릿한 전율과 함께 강한 중독성이 있다.

어릴 적에는 추석 날 아침 차례를 마치고 외삼촌과 낚시를 갔을 정도로 고기 잡는 일에 빠져 있었다. 방학이면 서울서 대학생이던 외삼촌이 와서 여러 놀이를 함께 해 주었지만, 족대나 소쿠리를 이용해 논사이의 도랑에서 고기 잡는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

외삼촌이 잡고 있는 족대 앞에서 풀숲과 돌들을 발로 헤집으며 고기를 몰고, 족대가 들어 올려 질 때 그 안에 퍼덕이는 고기를 보는 순간은 보물찾기 놀이를 하던 때처럼 기대와 궁금함이 최고조로 달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의 강렬했던 느낌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물가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 가끔 집 앞 공원의 냇가에서 작은 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 지고 작은 기쁨을 느끼게 된다.

외삼촌이 개학을 앞두고 서울로 가신 다음에 도랑에서 고기를 잡는 일은 내가 주도하게 되었고 세살 아래인 동생이 조수가 되었다.

그럴 때면 낚시는 못하고 동생과 함께 도랑에 나가 `여뀌`를 뽑아 바위에 올려놓고 찧어 물에 풀면 허연 배를 드러내며 떠오른 버들치, 피라미, 갈겨니, 버들붕어, 각시붕어 등을 잡았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 중의 하나이다. 미꾸라지. 동자개(우리는 뚝지라 불렀다) 메기, 붕어 등 2~3급수 에서도 사는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고, 깨끗한 물에서 사는 고기만 잡힌 것은 `여뀌`의 독성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여뀌`의 즙에서 나온 성분이 잠깐 동안 고기의 아가미를 마비시켜 떠오르게 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마취된 고기는 오래지 않아 깨어 도망치는 탓에 첨벙이며 고기를 쫓느라 옷이 다 젖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여뀌`의 즙은 물을 오염 시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지금 생각하면 친환경적인 고기잡이인 셈이었고, 우리가 물고기를 잡아온 날은 닭들에게 특식이 제공되는 잔치 날이었다.

우리에게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위로와 활기를 주는 일인지.

아이들이 어릴 적 강촌 인근의 개울에서 족대로 버들붕어 새끼를 잡았을 때, 예쁜 색을 보며 좋아하던 큰아이가 이제는 엄마가 되었다. 그 시절이 지금보다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말로 다 못할 행복감이 밀려온다. 다시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겠지만 그런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집 앞 수변 공원에 만발한 `여뀌`를 보니 어릴 적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이미 회갑을 넘긴 아우는 `여뀌`로 고기 잡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피를 나눈 형제라도 각자의 살림에 바빠 옛이야기를 나눈 지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 각박해진 세상을 탓할 것이 아니라 조만간 유년의 기억을 함께 나누며 푸근한 정과 동심에 빠져드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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