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노래 '갈대와 억새'
고향의 노래 '갈대와 억새'
  • 김문기
  • 승인 2019.11.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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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억새

가을도 겨울도 아닌 경계에서 찬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따라 걷다가, 황량해져가는 들판에 서면 머릿속이 텅 비어 메마른 느낌을 갖게 되는 11월이다.
많은 생명들이 긴 동면을 준비하려 그들의 안식처를 찾아가듯, 우리도 따듯하고 포근한 고향집을 떠올리며 무엇인가에 기대어 스산하고 외로운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시기이다. 해마다 시간이 한해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일을 수없이 겪으며 느끼는 무상함과 아쉬움은, 왜 나이가 들수록 더욱 진해지는 것인지. 모든 생명의 유한함을 알면서도 자신은 그 숙명의 고리를 벗어나고픈 망상에 빠져, 불안과 초조로 보내는 날들이 많아지는 역설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톨릭교에서 오래전부터 11월을 죽은 자를 위로하고 기억하는 ‘위령성월’로 정한 것도, 이 시기에 사그라지는 생명을 보며 우리의 생을 성찰하라는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자연이 지난 시간을 통해 보여준 순환의 섭리는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 맺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우리의 삶도 같은 과정을 되풀이 하며, 끝이 있음으로 인해 지금이 소중하고 경건하다는것을 깨닫게 되는 의미 있는 시기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순간이 감사와 사랑과 긍정으로 살기에도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새기며 사람들의 일상 속에 포용과 관용, 공감과 희생의 싹이 더 무성하게 자라기를기대해 본다.

 

갈대
갈대

이맘때면 대부분의 꽃들은 지고 산과 들과 물가에는 ‘갈대’와 ‘억새’만이 남아 겨울을 부르는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모습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갈대’와‘억새’는 같은 ‘벼’과의 식물로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같으며, 일부 대중가요나 문학작품에서 혼동되어 사용된 탓에 많은 이들이 구별에 어려움을 겪지만, 사진으로도 구별되듯 형태와 서식환경이 다르다.
‘갈대’는 물가에 무리를 지어 자라고 키가 2m 이상이며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여러 해 살이 식물이다.
줄기는 속이 비어 대나무와 비슷하다 하여 ‘갈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영어로는 ‘reed’로 불린다. 어린순은 식용으로 쓰이며 줄기는 펄프의 원료 외에도 발을 엮거나 지붕을 덮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짚보다 10년 이상 수명이 길어 지금도 친환경 주택의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열매가 풍성해 갈색 솜사탕이나 커다란 먼지떨이 모양이어서 솜 대신 보온재로 쓰이기도 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해온 탓에 신화나시, 음악 등의 단골 소재가 되었고, 필기구, 악기, 청소용 빗자루 등으로 이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길이를 재는 자의 용도로 쓰이기도 해 그리스어 이름이표준, 정형 등을 의미하는 카논(영어로 canon)의 어원이 된 인류와 가장 가까운 식물중 하나이다. 한방에서는 줄기와 뿌리를 진토, 소염, 이뇨, 해열 및 해독에 사용한다. 꽃은 9월경 피어 10월 하순부터 열매를 맺는다. 열매와 꽃은 자줏빛이 도는 갈색이며 살짝 흰색도비친다. 염분에도 강하고 수질정화 능력이 뛰어나 많은 나라에서 강 하류에 ‘갈대’밭을 조성하여 수질 정화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천만과 시화호가 대표적인 ‘갈대’밭이며 요즘 물가에 있는 커다란 풀밭은 대부분 ‘갈대’밭이라 보면 된다. 많은 새들과 작은 짐승, 곤충들에게는 좋은 서식처를 제공하는 ‘갈대’는 여러모로 환경에 중요한 식물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이란 베르디의 오페라 중의 가사로 인해 연약한 식물로 알려져 있지만, 갈대의 뿌리는 매우 강하여 웬만한 물살도 견뎌 내고 뿌리와 씨앗으로 번식을 이어가는 모습은, 흔들리는 줄기와 열매만 보고 판단하는 우리의 시각적 판단이 얼마나 편협하고 왜곡된 것인지를 깨우쳐 주기도 한다.

억새
억새

 

‘억새’는 산지나 들녘에 주로 자라는 키가 1~2m 정도의 여러 해살이 풀로, 무리를 이루어 서식한다. ‘갈대’에 비해 잎이 길고 예리해 손을 베이는 일이 종종있어 채취하여 가공하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예전에는 줄기를 생활용구나 발, 지붕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억새’도 여러 가지 쓰임새가 있어 ‘갈대’와 비슷한 약성이 있고, 최근에는 바이오 에너지원으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짓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탓에 억센풀이란 특성에서 유래된 이름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주 분포지가 동아시아에 한정되어 있으며 ‘물억새’ 외에는 습지에 서식하지 않는다.
억새의 꽃은 9월 경부터 피며 자줏빛의 단정한 모습이고 열매는 흰색으로 늦가을 산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어, 전국 여러 산에서 ‘억새’ 축제를 열어 그 장관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준다. ‘갈대’에 비해 시각적으로 훨씬 아름답게 보여 늦가을의 정취를 대표하는 식물이 되었지만 많은 이들이 ‘억새’를 ‘갈대’ ‘갈대’로 혼동하여 부르는 일이 많다. 억새의 씨앗이 흰색을 띄고 있어 백발의 황혼을 상징하기도 한 탓인지 석양빛에 보는 억새가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가요에서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 인가요~’하는 구절이 ‘억새’의 경기지역방언이라는 설이 정설로 여겨졌으나, 요즘은 왜가리를 울음소리를 표현해 부르는 별칭인 왁새라는 방언을 작사자가 풀어 쓴 것이란 설도 있어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다.


흐린 11월 어느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우리가곡 ‘고향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날 회색의 분위기속에 들려오는 음률과 가사는 이전과는 다른 감동으로 가슴을 울렸고, 창밖으로 보이던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던 모습과 어우러져 무덤덤했던 이 무렵 마음과 눈을 사로잡는 인상적인 기억이 되었다.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그 곳에서 느낀 감성과, 흙과 바람의 냄새와 풍경을 기억 속에 담고 산다는 것은 마음의 오아시스를 갖고 있는 것이다. 삶이 힘들고 고난과 시련이 밀려와도 가슴속에 안락한 피난처를 갖는 일이다. 비록 여러가지 부족함으로 보낸 어린 시절이지만, 커다란 버팀목으로 나를 지탱해 준 고향의 기억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삶의 원동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최근 큰아이와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아이의 어릴 적 얘기가 나왔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아이에겐 내가 가진 고향이 없었다. 아파트라는 규격화 된 집과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자란 아이의 가슴에는 가족과의 여행이나 동생, 친구들과의 교감이 과거의 주요 기억인 것 같아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나 혼자 포근한 고향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아비로서 미안함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그러나, 딸아이 본인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친구들 사이에서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지금도 개구리 소리와 겨울 바다를 보러 나가는 못 말리는 아이엄마가 되었다고나 할까)
가을 말미에 공원을 걷다보니 ‘갈대’와 ‘억새’가 만발해 있다. 이제 곧 추운 날이 올 것이니 어서 고향으로 가라고 재촉하는 속삭임이 들린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는 나를 기다리는 외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떠오르게 하고, ‘억새’는 어서 오라 부르는 어머니의 손길을 보는 것 같다. ‘갈대’와 ‘억새’가 만발한 숲 사이로 고향의 옛 모습이 보인다.


초겨울 아침, 서리를 뒤집어 쓴 배추밭의 모습과 뒷산 들머리 감나무에 달려있던 까치밥의 처연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돌담과 장독대에 쌓인 소복한 눈은 왜 그리 포근함을 느끼게 했었는지.
추운 겨울이 오더라도 가슴 속에 자리한 고향의 기억은 언제나 따뜻하게 나를 감싸 줄 것이다. 한해의 끝자락에 만나는 ‘갈대’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니 옛 고향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는 모두 없어져 꿈에서나 만나던 고향의 정경이 ‘갈대’의 얼굴과 ‘억새’의 손짓 속에서 되살아나는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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