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은 왜 할부가 안 되나요?
미술작품은 왜 할부가 안 되나요?
  • 한선영
  • 승인 2019.12.03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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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락 갤러리 대표 장현근

 

세상은 늘 바뀌어가게 마련이다. 바뀐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를 깨뜨린다는 말이기에 변화를 시도하려는 사람은 기존의 시각으로 보면 좀 엉뚱해 보이거나 때론 무모해 보이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그런 세간의 평가에 굴하지 않고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 호에서는 미술품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보았다.

 

자동차가 발명된 이래, 차는 오래도록 소유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렌터카(rent-a-car)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은 1925년 미국에서 조 선더스(Joe Saunders)가 자신의 자동차로 대여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자동차 리스를 경험한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리스카(lease car) 즉, 장기 렌터카의 수요도 증가하고, 미국인들이 해외에서도 렌터카를 찾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 렌터카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이렇게 이전까지는 없던 생소한 개념이 어느덧 우리 생활에 일상화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그런데 그 시작을 살펴보면 누군가 첫 걸음을 내디딘 덕분일 때가 많다. 그 첫 걸음은 대개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도이기에 조금은 엉뚱하고,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모한 시도들이 있기에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세상은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게 아닐까?

오늘 만나기로 한 장현근 대표도 그런 첫 걸음을 걷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그의 무모한(?) 첫 걸음은 자동차도, 가전도 할부가 되는 세상에 미술 작품은 왜 할부가 안 되냐는 엉뚱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법학과 졸업 후 증권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홈쇼핑으로 자리를 옮겨 7년간 100만 건의 보험 판매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한 때는 시속 40km로 달리는 전기차를 타고 해남에서 임진각까지 국토를 종단하기도 했다.
이력만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구나 싶은데,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의외의 장면이 필자를 맞이한다. 명함에는 캐피털 회사의 대표라고 나와 있는데 책상에는 온통 문화와 예술 관련한 책들로 그득하다. 누군가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게 마련인데, 그저 전시용 책들이 아닌 나름의 연결 고리가 있는 책들이어서 예술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이 엿볼 수 있었다. 게다가 사무실 내부는 마치 작은 갤러리인 듯 크고 작은 미술 작품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무실 풍경마저 이러니 그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본인 소개를 좀 해달라.

에코캐피탈과 에코락갤러리 대표를 맡고 있다. 에코캐피탈은 여신금융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할부리스금융회사로 금융소외계층인 농축산 농가를 주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더불어 본사 2층에는 에코락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전시 공간을 구하기 쉽지 않은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할부금융회사와 갤러리라니 조금 생소한 조합이기도 하다. 캐피탈 회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처음에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미래의 신 성장 동력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던 중에 미술품 할부 구매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리 회사에서는 금융뿐 아니라 고가의 카메라나 조명 장비의 할부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고가의 장비도 할부를 하는데 미술 작품도 할부를 하면 안 될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이 나왔다.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미술품 할부 구매라는 새로운 방식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갤러리는 오프라인 전시를 위한 공간이고,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수시로 작품을 보고 할부 구매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술작품을 할부 판매하다니 무척 획기적이다. 게다가 온라인 판매라니, 어떻게 보면 조금 무모한 도전 아니었을까?

전에 없던 방식이라 그렇게도 보일 것이다. 이런 방식은 국내 최초 아니 아마 세계 최초일 테니까. 이런 획기적인 시도를 하게 된 것은 그 이전부터 영화 조합에 대한 투자라던가 문화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술품을 할부로 판다니까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금융감독원에 미술품 할부판매업으로 승인을 받아 정식 운영되고 있으며 해마다 매출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내가 온라인 미술품 판매의 가능성을 본 것은 홈쇼핑회사에서였다. 실물이 아닌 화면으로 본 것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실제 경험을 통해 미술품도 온라인으로 판매가 가능하겠구나 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참여 작가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전문 큐레이터를 통해 검증 과정을 거친 전업 작가들로 구성되는데, 2019년 10월 현재 1,541명의 작가, 작품 수로는 20,433점이 등록되어 있다. 사업 시작 후 3년간 누적 판매액은 9억 3천여만 원, 작품 수 851점에 이른다. 2층 갤러리는 전시 공간 마련이 쉽지 않은 신진 작가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고, 사이트를 통한 판매는 신진, 원로 구분 없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다. 처음부터 플랫폼을 의도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하고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미술계의 새로운 플랫폼 비즈니스가 되었다.

사이트에 작가로 등록하는데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는지?

회화, 조각, 판화, 사진, 그래피티, 디지털아트 등 시각예술분야의 전업 작가라면 신진작가에서 원로작가까지 모두 등록 가능하다. 다만 전업 작가 보호 차원에서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작가의 참여는 제한하고 있다.

미술품 할부 구매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먼저 에코락갤러리 사이트에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이미지, 작품가격, 작품 크기 등 작가 정보와 작품 정보를 등록한다. 거기에 누구나 들어와서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구매를 하고, 자신만의 컬렉션을 꾸미게 된다. 사실 청년 작가들이 별도 비용을 들여 자신의 사이트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작가들에게 에코락 사이트를 Cyber catalog resume(전작도록)의 개념으로 쓰면서 자신의 작품을 관리하고 판매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사이트에 작품 파일을 DB화함으로써 작가 개개인의 포트폴리오가 될 뿐 아니라 판매 금액, 실적 같은 거래정보가 누적 관리된다. 이를 통해 작가도 시장의 반응을 알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사이트에 소개된 작품들은 최장 60개월까지 할부로 구매가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한 달에 커피 한 잔 정도의 가격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오리지널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 실제로 에코락갤러리의 소장자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다.

60개월 정도의 장기 할부면 고객 입장에서 이자가 부담될 텐데?

그렇지 않다. 모든 작품은 무이자 할부 구매로 진행하고, 할부에 대한 이자는 회사에서 부담한다. 60개월 할부를 기준으로 할 때, 컬렉터 입장에서는 대략 작품가의 20% 정도를 싸게 사는 셈이 된다. 작품이 판매되면 작가와 갤러리가 6대4의 비율로 나눈다. 결과적으로 작가 6 : 갤러리 4 : 소장자 2의 비율로 이득을 보게 되니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셈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무래도 회사의 부담이 커지지 않나? 회사로서는 어쨌건 이익이 나야 할 텐데?

캐피털 회사 내의 한 팀이 갤러리 관련 사업을 담당하므로 회사 전체로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수익이 적게 나더라도 기존의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팀이 있으니까 서로 보완이 된다. 미술품 판매 사업 역시 크게 이익을 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손해를 보는 구조는 아니고.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다.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라 반향이 클 것 같다. 실제로 어떤가?

처음에는 ‘그게 되겠어?’하고 반신반의하며 우려 섞인 시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문화예술경영체’다. 미술품을 할부로 구매하게 되면 일반 대중들의 접근도 쉬워지고, 저변 확대가 되면서 미술 시장도 활성화되지 않겠나? 이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하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시장이 확대되는 긍정적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책상 위의 책들도 인상적인데 한쪽에 잔뜩 쌓여있는 다이어리들도 눈에 띈다. 무슨 내용을 그렇게 빼곡하게 써놓았나?

오래전부터 내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측면에서 사진을 찍어왔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하듯 뻔한 사진을 찍었는데 그런 사진은 아무도 좋다고 안 하는 거다. 그래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책이며 각종 강의를 통해 예술적 궁금증을 풀어가며 그 내용들을 다이어리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상 한쪽에 수십 권 쌓여있는 게 다 그런 기록들이다. 그렇게 공부도 하고, 작품 방향도 변화시켜가다 보니 어느 순간 주위의 반응도 달라지더라.

얼마 전 ‘제 1회 아트樂페스티벌’이 열린 것을 보았는데, 성과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2백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2천 5백점 정도를 전시하였고, 이틀간 7천 1백만 원의 판매수익을 올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아트페어인 KIAF와 비교하면 작품 한 점 가격밖에 안 되는 금액일 수도 있지만, 3년차 갤러리가 단독으로 주최한 첫 번째 아트페어에서 이틀간 판매한 금액이니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키아프는 세계 유수의 174개 갤러리가 참여해서 사흘 동안 310억 상당의 작품이 판매되었으니까. 하지만 행사의 규모나 수익을 따지기보다 외부의 지원 없이 자체의 노력만으로 이런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내년에는 규모나 성과 면에서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가 첫 회였으니 앞으로 3년 안에 10억 상당의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 페스티벌이 미술 대중화란 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작가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을 것 같다.

그렇다. 이틀간의 판매 수익 중 준비비용을 제외한 모든 수익은 작품이 판매된 작가들에게 7대 3의 비율로 전달되었다. 작가들이 그 돈으로 캔버스와 물감을 사면 미술 재료 시장에도 다시 수요가 발생하고, 그런 식으로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 우리가 원하는 선순환효과도 가시화될 것이다.

작품 가격은 대개 갤러리에 별도 문의하는 게 관례였다. 작품명 옆에 작품 가격을 명시하는 이유는?

작품 가격은 공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에 와서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이제까지 미술 작품 가격은 거래 당사자들 외에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부동산 가격은 실거래가까지 객관적으로 공개되어 있으니 온 국민이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관심이 높지 않은가? 미술품 가격 또한 공개적으로 투명해지고, 객관화되면 미술품 거래 시장도 더욱 커지고 발전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미술품 판매도 고가로 거래되는 옥션부터 저가의 복제 포스터까지 시장이 다양한 것 같다.

그렇다. 숲도 초본, 관목, 노거수 등 다양한 식물들로 구성되지 않나? 숲의 생태계가 다양해야 숲 전체가 건강해지듯이 미술 시장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동안 한두 종류의 주류로만 구성된 기형적 숲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끼부터 노거수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건강한 숲이 되기를 바란다. 나무 하나가 죽으면 거름이 되어 자양분이 되고, 다시 새로운 나무를 키우는 선순환이 되는 게 건강한 숲 아닐까? 미술시장은 작가만 키운다고 될 것도 아니고, 대형갤러리만 있다고 될 일도 아니다. 화랑협회나 옥션도 필요하고, 오픈 갤러리처럼 미술품 렌탈을 주로 하는 회사도 필요하고, 아트페어, 갤러리, 작가, 딜러, 컬렉터,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해야 한다. 각각의 요소가 활성화되고 안 되고는 시장이 결정한다.

당연하고도 공감되는 얘기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캐피탈 회사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겠지만, 미술품 할부 판매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폄훼하는 소리를 들을 때다. 부자들의 고급 취미인데 할부 판매를 한다고 폄하하거나,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하는 것은 신진작가들을 배양하는 유치원 같은 역할이고, 그렇게 성장한 작가들이 주류 시장으로 진입해 더욱 큰 작가로 커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미술품이 어떻게 투자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좀 더 연구해서 발전시키고 싶다. 금융과 미술을 잘 연결만 하면 된다. K-POP이 세계와 연결되었듯이 한국의 미술도 세계시장과 연결 가능한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박세리라는 뛰어난 선수로 인해 한국의 골프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뛰어난 작가를 발굴하고 키워내다 보면 한국미술도 세계시장에 우뚝 설 날이 있을 것이다.

 

글/사진 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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