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기 '맥문동'
사랑의 온기 '맥문동'
  • 김문기 객원편집위원
  • 승인 2019.12.0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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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다시 리셋 하여 새로운 해법을 찾는 시간이 되기를, 보람과 만족으로 보낸이들에게는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시작되어 대부분의 생명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휴식과 동면의 시기를 보내듯, 우리도 열뜬 연말 분위기에 휩쓸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쉼과 돌아봄의 시간을 갖는 12월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한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왔다. 12월은 1년의 마지막 달로 많은 이들이 아쉬움과 후회, 새로운 기대감등 여러 감정을 가질 수 있겠지만,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늘 있어온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담담히 한 해를 마감하는 자세도 필요 하다는 생각을 한다. 젊은 시절의 12월은 들뜬 상태에서 기대와 설렘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나이 들며 지나온 여러해의 연말마다 느꼈던 무상함과 초조함도, 이제는 무덤덤하게 넘기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은 나이와 함께 성숙해진 내 모습인지, 아니면 포기에서 오는 도피인지 아직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라면 차라리 순응의 지혜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지난 1년을 후회와 불만으로 보낸 이들에게 12월은 다시 리셋 하여 새로운 해법을 찾는 시간이 되기를, 보람과 만족으로 보낸 이들에게는 더 큰도약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시작되어 대부분의 생명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휴식과 동면의 시기를 보내듯, 우리도 열뜬 연말 분위기에 휩쓸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쉼과 돌아봄의 시간을 갖는 12월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사는 남한산성 자락의 위례는 서울보다 평균기온이 2~3도는 낮다. 서울 도심에 살던 때보다 계절의 변화를 더 빨리 느낄 수 있고, 야생 꽃을 자주 만날 수 있어 아주 좋은 곳이다.

12월이 되어 주변의 풍경이 갈색으로 바뀌어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이즈음에, 그늘지고 냉기 가득한 화단 구석에서 초록의 생명이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았다. 생김새가 난과 비슷하고 한겨울에도 풀빛을 잃지 않고 있어, 혹시 원예 종사자들이 개량한 외래종인가했는데 ‘맥문동’이라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임을 알고 매우 반가웠었다. 무채색의 뜰에서 녹색을 간직한 채, 추위를 견디는 대견한 식물에 대한 그간의 무심함이 ‘맥문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맥문동’은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 해살이 풀로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며 산과들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그늘이나 커다란 나무 밑에서도 번성하는 사철 푸른 외떡잎식물이다.

키는 30~50cm 정도이며 잎은 동양란이나 부추 잎과 비슷하고 뿌리에서 잎이 바로 나온다. 뿌리의 끝부분에 덩이가 있고, 그 생김새가 보리와 비슷해 보리를 의미하는 ‘맥’과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이라는 특성에서 '맥문동’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꽃은 여름의 끝날 무렵 줄기를 따라 고귀함과 신성함의 상징인 보랏빛으로 무리지어 피며, 예쁘기보다는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격조 있는 자태를 뽐내고, 늦가을에 검고 윤기 나는 열매를 맺는다.

약성도 우수해 한방에서는 덩이뿌리를 소염, 강장, 진해 및 거담, 강심제 등의 약재로 사용하며 겨울에도 초록의 잎을 유지하고 있어 ‘불사초’로 불리기도 한다. 예로부터 ‘신선의 음식’ 또는 ‘신선의 약재’로 불리기도 했고 사포닌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신농본초경’에 '맥문동’을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장수할 수 있고,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약성은 좋고 독성이 없는 식물이다. 다만 몸이 찬 소음인들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소화불량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전문가와 상의 후 복용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공기정화 식물로도 각광을 받아 새집 증후군의 예방을 위해 집안에 기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생명력이 강하여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는 소나무 아래에서도 잘 자라, 요즘에는 조경용으로 많이 식재 되어 아파트 화단이나 공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손자와 나는 지난 초여름부터 추석 무렵까지 집 앞 공원의 ‘맥문동’ 군락에서 메뚜기 방아깨비 등의 곤충을 잡았다 놓아주는 놀이에 푹 빠졌었다. 아직도 푸른 ‘맥문동’을 본 철모르는 손자가 잠자리채를 찾으며 곤충채집 가자고 할 때 마다, ‘맥문동’이 준 좋은 선물에 감사하며 그 기억이 오래 남기를 바란다.
‘맥문동’은 통풍이 잘 되고 햇살이 좋은 곳을 좋아하지만,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도 잘 자라 는 강한 생명력에 감탄과 경외를 느끼게 된다.

12월은 겨울이 시작되어 모든 사람들이 따스한 온기를 찾게 되는 시기이다. 가슴속에도 스산함을 느껴 쓸쓸하고 외로움에 빠지는 날이 많아져, 봄 보다 더 사랑에 목마른 계절이다. 그나마 위대한 사랑을 가르쳐 주신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이 있어 사랑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사랑이란 단어는 우리 옛말에서 명사는 ‘다솜’, 동사는 ‘괴다’인데, 이는 무엇인가 또는 누군가를 늘 생각하고 마음을 주며, 웃음이 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한다. 필자의 기억 속에 이런 감정을 가져 본 적은 사춘기 때 겪었던 첫사랑과 아내와 연애하던 청년시절이었으나, 최근엔 네 살이 된 손자와 함께 살며 그 의미를 더 깊이 깨닫고 있다. 많은 친구들이 부부는 의리나 동지애로 산다는 농을 하며 식어버린 사랑에 대한 변명을 하지만, 손주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에 미소와 사랑이 넘치고, 어쩔 줄 모르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손주는 양육에 대한 부담과 책임이 없어 예뻐만 해주면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제 함께 지내며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은 무엇에도 비할 수가 없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대상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일이다.
주위의 모든 생명들이 눈이나 찬 서리를 맞으며 말라 가는 이 시기에, 늘어진 초록 잎 사이의 마른가지에 달린 까맣고 반짝이는 ‘맥문동’ 열매가, 손자의 눈망울을 닮은 것 같아 귀엽고 사랑스러워 한동안 곁에 앉아 지켜 본 적이 있다. 그 때 가슴속을 채웠던 감정은 황량한 계절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낀 기억으로남았다. 모든 생명이 동면에 빠진 삭막한 화단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추위를 견디는 `맥문동`을 보며 우리
세상을 되돌아본다.

요즘 젊은이들의 비혼과 저 출산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아진다. 젊은이들이 성장기에 누렸던 유복한 환경에 비해 결혼이 주는 불확실성과 경제적 압박감,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 등이 원인일 수 있겠지만, 사랑의 의미를 보여주거나 가르치지 못한 부모세대의 책임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배우자에게 입맞춤이나 포옹이라도 하려하면,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라는 경고를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 애정을 나누는 것마저도 인색하게 살고 있다. 사랑의 표현을 꼭 행동이나 말로 해야 아느냐고 통박을 주는 일이 당연시 될 정도로, 부부간의 스킨십이나 달콤한 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고사하고, 덤덤하고 근엄함과 냉정함으로 지내는 것을 당연시 하는 우리의 생활이, 홀로 사는 젊은이들의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교적 사고에서 자란 우리세대의 이런 모습이, 상대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당당한 자신감과 개성의 존중, 글로벌한 사고와 개방성을 가진 자녀 세대에게 결혼에 대한 무관심이나 회의를 갖게 한 것은 아닌지.

비록 우리의 현실이 팍팍하다 해도, 세상에서 경제적 풍요보다 사랑이 가득한 삶이 진정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 주면 어떨까. 자녀들 앞에서 서로 보듬어주고,닭살이 돋더라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하고, 온화한 눈길과 부드러운 태도로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들도 우리를 닮아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꾸리려 할 것이란 기대를 갖는다.

우리도 사랑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냄으로 세상이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 된다는 믿음으로, 말과 행동을 변화시킨다면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 생각 한다 .
모든 생명들이 동면에 들어가 적막하고 찬바람만 지나는 화단의 구석에서 초록의 색을 지니고 있는 ‘맥문동’이 다른 식물보다 사랑의 온기를 더 많이 품고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를 보며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좋은 시절을 함께 맞을 준비를 해요’하는 ‘맥문동’의 메시지가 흰 눈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겨울 초입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실천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묵상하는 성탄을 맞으시길 바라며,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맥문동’의 열매에서 사랑하는 이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감사와 사랑을 베푸는 연말을 보내시길 바란다.

글/사진 김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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