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무예, 실크로드 기마민족의 유전자
마상무예, 실크로드 기마민족의 유전자
  • 박정진 객원편집위원
  • 승인 2021.02.2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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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면서 무예를 펼치는 마상무예, 혹은 기사무예의 가장 클래식한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대개 12세기 무렵 초원의 세계최대제국을 일으킨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을 들 것이다. 아니면 기사도(騎士道)로 유명한 유럽이나 명마(名馬)의 산지로 알려진 중동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오늘날 세계 마상무예의 전통법식을 수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무예보도통지’에 실린 마상무예 6종목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몽골에서는 지금도 유목민의 생활모습이 많이 남아있고, 유럽에서는 기사도의 전통이 남아있지만, 마상무예의 기술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동아시아의 최첨단무예를 집대성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덕에 마상무예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궁(窮)하면 통(通)한다고 했던가. 무예도보통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세계기록유산계획 국제등록부)에 등록되었다(2017년 10월 30일).

마상무예는 인류사에서 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예로 각광받았고 ‘무예 중의 무예’였다. 이는 북방기마민족들이 세계를 정복한 역사에서도 증명이 된다.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의 조상(동이족)들은 활과 함께 마상무예의 탁월함을 통해 오래 동안 중국과 대륙의 지배권을 다투었다.

말을 타고 활과 창과 칼을 사용하면서 각종 무예를 펼치는 마상무예는 말에 오르기 전에 이미 웬만한 무예를 마스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달리는 말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자유자재로 몸을 가누면서 무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무예의 달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마상무예의 제일 신조는 ‘인마일체(人馬一體)’이다. 말의 속도와 무예의 강약과 리듬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말과 일심동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있는 말을 마치 자기의 몸처럼 느껴야 기술을 펼칠 여유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올림픽 종목인 승마와 마상무예의 차이는, 승마는 철저하게 고삐를 잡아야 하는 스포츠이지만, 마상무예는 정반대로 고삐를 놓아야 하는 무예이다. 마상무예의 기사들은 무릎으로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마치 말을 자신의 하체처럼 느껴야 한다. 말은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동물이기에 어떤 작은 동작과 소리에도 무엇을 의미하고 요구하는지, 서로 소통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마상무예의 대부인 김영섭 회장(세계기사연맹회장)은 요즘 세계를 지도하느라 한국에 머물 여가가 없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마상무예를 즐기는 ‘기마민족문화 1루트’에는 이란(페르샤), 터키(오스만투르크),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족국가들, 중국회족(신장위구르자치구), 몽골, 그리고 한국이 포함된다. 2루트에는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포함된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이슬람문화권이기도 하다. 고대의 실크로드문화권의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의 인구는 17억에 이르고 마상무예의 성장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올림픽종목인 승마는 서구문화중심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이들 나라들은 전통종목으로 마상무예를 올림픽종목에 넣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른 한편 별도의 마상무예축제를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터키와 카자흐스탄의 국민체육부와 에스노(ethno, 민족)스포츠협회는 ‘2021년 세계기마유목민 문화축제’ 혹은 ‘에스노스포츠대회’를 기획하고 있고, 지금도 전국체전규모의 대회를 각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아마도 전통무예종목으로서 단일종목으로 올림픽과 같은 규모의 제전을 이끌어갈 가장 유력한 종목이 마상무예이다.

김영섭 회장은 본래 도가계열 한국도가정종(道家正宗) 백학문(白鶴門) 출신이다. 백학문은 중국 당나라 때 종남산 일대에서 번창한 가문이다. 백학문 수행결계(結戒)애는 토납(吐納) 외에 도인법과 각종 권법(拳法)과 무기술(武技術)을 포함하고 있고, 내공(內功)수련과 탕세(湯洗)로 정신수련을 병행한다. 권법에는 목인(木人)과 장권(長拳)과 단권(短拳)이 있으며, 비조(匕爪)는 그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무기술은 십팔반(十八班)과 외반(外班)으로 나뉜다.

김회장은 어릴 적 빙주(氷珠)수행을 한 것을 잊지 못한다. 엄동설한에 추수를 한 수수깡묶음에 짚단을 깔고 짚단 속에 들어가 겨울밤을 지새우면서 몸에 열을 북돋우는 내적(內赤)수련을 하기도 했다. 내적수련과 외적(外赤)수련은 도가의 기본이다. 현재 40년째 수련을 하고 있는 적전(嫡傳)제자로는 김인준, 박병배, 박춘식, 성제훈 등이 있고 김회장의 아들 김우성도 후계자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제자들은 3백여 명에 이른다.
“무예는 도제교육을 통한 인성교육과 기예를 전수하는 과정으로 끝없이 갈구하는 공부의 과정입니다.”
그가 목인(木人: 무예훈련을 위한 나무인형)을 앞에 두고 좌우의 손과 가운데 암수(暗手), 그리고 다리를 사용하는 공격과 방어기술 ‘백학문기예(白鶴門技藝)’ 수련과정을 보노라면 이소룡의 절권도 목인훈련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무예의 고수를 찾아 중국과 대만 등지를 유람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80년 초에 무예도보통지를 접하게 되었고, 그 후 20여 년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2002년)을 완료했으니 마상무예를 위해 평생을 바친 셈이다. 녹원파오랜드의 도움으로 몽골에서 2백 마리의 말을 수입할 수 있었고, 제주도의 말과 훈련장을 제공받았다. 마상무예경기장의 공간구성과 배치 등 경기장설계를 비롯해서 경기규칙과 복식도 그의 손에 의해 하나하나 이루어졌다.

“세계 토종말의 크기는 거의 같습니다. 우리가 제주도 조랑말이라고 하는 것도 개량마입니다. 경기에 사용하는 말은 선수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선수의 몸무게와 말의 크기는 효과적인 경기를 위해서 선택되어야 하니까요. 말이 크다고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요즘 세계각지에서 열리는 대회축사를 스마트폰으로 발송하기도 한다. 최근 오만을 방문 중에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에스노스포츠협회 연말시상식 축사를 발송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유목민문화의 역사와 정신을 가진 나라로서 한국의 마상무예와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대인들의 기마문화는 현재 21세기에 새로운 스포츠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양국이 세계화에 앞장 설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인류역사와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마상무예는 서구 및 엘리트중심의 올림픽스포츠와 달리 일종의 ‘문화스포츠’로서 전통에 무게를 둔 인류보편종목이다. 현재 세계기사연맹(WHAF) 정회원 35개국 및 국제텐트패깅연맹(ITPF) 72개국 등 1백여 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이란과 인도네시아에는 기사학교개설과 교과목개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슬람경전인 코란에 “수영, 말타기, 활쏘기는 성인으로 가는 덕목”으로 기술되어있는 점도 마상무예 붐을 이루는 큰 변수이다.

마상무예세계대회인 세계 기사선수권대회는 올해(2019년)로 제15회를 맞았다. 무예 단일종목으로 유일하게 유네스코의 공식후원을 받는 올해 세계 기사선수권대회(2019년 8월27일∼ 9월1일, 속초시 영랑호 화랑도체험관광지)에도 미국, 말레이시아, 이란, 터키, 핀란드 등 22 개국 150여 명의 선수와 임원들이 참가하는 가운데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올해는 충추 세계무예마스터십 대회의 기사종목이 경기장 부재로 영랑호 화랑도체험 관광지에서 함께 치러져 속초가 마상무예의 고장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경기종목으로 말을 달리며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기사(단사, 속사, 연속사)와 마사희, 모구 단체전, 중동아시아지역의 전통기사 경기인 콰바크, 2018년 시범경기로 선보인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타일을 선보였다.

‘마사희’는 고구려 고분벽화 ‘기마사희도’의 모습을 재현한 토너먼트경기로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어 떨어뜨려야 점수를 획득하는 종목이며 ‘모구’는 싸리나무로 구를 만들어 가죽으로 싼 공을 한 사람이 끌고 다른 2명이 말을 타고 추격하며 활을 쏘아 맞추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이다.

올해 개회식에 오만의 텐트페깅(천막 말뚝 뽑기)시범과 우리나라의 마상무예시연을 통해 관람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텐트페깅은 유목민족의 기마전술의 핵심으로서 상대방의 텐트를 벗김으로써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강력한 무술이다. 대회장 한편에 무료 활쏘기 체험장을 마련해 관람객이 직접 활을 쏴보고 각국의 전문선수들에게 지도를 받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